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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ul 24. 2017

네게 보내는 편지

세월호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님 에게

네게 보내는 편지 _ 여름




“우리는 모두 존귀합니다.”
얼마 전, 제주시에서 들었던 이 말이 며칠 동안 내 귓속을 맴돌았는지 몰라. 버스를 탈 때도, 문구점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얼마나 지나야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너는 네 자신이 존귀하다고 느낀 적이 있니? 있다면 언제야? 나는, 잘 모르겠어. 저 말을 들었을 때야 다시금 의식한 것 같아. ‘맞아, 나는 존귀해 너도 존귀하고,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이들도 존귀해. 우리는 모두 존귀해.’


제주시 생느행에서 한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님의 토크콘서트 ‘달려라 꼴통 동수’에 다녀왔어. 동수 님의 이야기는 짤막한 기사들로만 알고 있었고 언젠가 유가족분이 제주에 오셨을 때, 그와 멀찍이 앉아 식사했던 것이 다였어. 나도 그를 잘 모르기에,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기에, 버스를 타고 한라산을 넘어갔어.

3시 반 경에 나는 생느행에 도착했어. 늦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일손이 필요할까 해서. 스텝분들은 12시부터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셨다고 들었어. 음료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드시는 그들은 정말 분주해 보였어. 아마 생느행이 작지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가득 찼기 때문이었겠지. 



다양한 분들이 동수 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와주셨어. 대정중학교, 중앙고등학교에서 함께 해주셨어. 동수 님의 아내분, 김형숙 님의 초, 중, 고등학교 동창분들도 많이 참석하셨고, 동수 님이 다니셨던 고등학교의 총동창회에서도 여러분들이 참여해주셨어. 이런 일이 있었냐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정말 궁금해서 오신 분도 계셨어. 3년, 이면 오랜 시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더라.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었을 즈음 동수님의 토크콘서트는 시작되었어
“저는 악마입니다.”
확고한 목소리로 동수 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면, 과연 너는 믿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기다리라’는말을 들으면, 분노가 올라오고 합의를 할 수 없게 되기에, 자신이 악마가 되어간다고 그는 말했어. 그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그 날을 떠오르게 만들고, 기다림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굳은 생각이 그의 머리에 뿌리내린 거지.
*광주 시민 10분 중 7분은 5월이면 우울하고 불안을 느끼는 등의 ‘5월 증후군’이 여전하다고 해. 40년이 지나가는 데도 불안함을 느끼시는 거야. 상처를 건드리면, 특히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면, 아프고 불편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너도 생각하지 않니?




“그날 그것은 본능,이었나요?” 
토크콘서트에 함께 해주신 한 분께서 동수 님께 여쭈었어.
“모르죠. 어릴 때부터 바다에 나가면 많이 구했어요. 뭐, 바다에 빠진 사람도 구해봤고, (…) 그냥, 그냥 저라 어릴 때부터 커오면서 그냥 그렇게 컸고, 그때는 가서보고, 저기에 내 딸이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하게 된 거…….”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그의 표정으로 보건대, 그의 행동은 본능이었다고 나는 확신했어. 동수 님은 그의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토크콘서트 1부가 끝날 즈음 말씀하셨어.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도우라고 그의 할머니는 그에게 항상 말했대.



“세월호에서 국가가 하지 않은 일을 내 남편이 했는데, 왜 국가는 내 남편을 외면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국가가 하지 않은 일은 국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않은 일을 국민이 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오는 것이더라고요.”
지난 3년 동안 동수 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셨을 형숙 님께서 덤덤하지만 굳게 하신 말씀이야. 참담하지 않니? 어느 누가 힘내라고, 그럼에도 희망이 있을 거라고 감히 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적잖은 시간 동안 동수 님과 형숙 님이 문득 떠올랐을 때, 이 말씀이 내 머릿속을 헤집을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되더라. 그날, 토크콘서트에 온 사람들에게 환대와 웃음을 아끼지 않은 형숙 님이 깊게 남아 있어.





“이렇게 많은 분이 축하공연을 해주실 거라 생각지 못했어요!”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많은 분이 무대를 오르내리셨어. 즐겁게 싸워야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잠시, 라도 우리가 즐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예술인들이 채워준 시간은 무겁지 않았어.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자리를 채워준 분들과 함께 춤도 췄어. 동수 님도 무대에 오르셔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부르셨어. 그의 노래가 끝나고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기에 우리는 마지막 소절을 한 번 더 불렀어.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의인, 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이래. 또 의로운, 이라는 말은 옳고 바른 사회를 위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믿음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간다는 걸 의미한대.
토크콘서트 중간중간 “우리 모두가 의인입니다!”라고 구호를 외치듯 사회자는 말했어. 그때는 별생각 없이 박수를 치며 흘려들었어. ‘의인’이라는 말이 동수 님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나 보다, 하면서. 근데 말이지, 그저 외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곰곰이 곱씹어보니, 우리 모두가 동수 님의 의인이 되자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것 같은 장마야. 해는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하지만 그것이 장마의 습기를 가시게 해주지는 않아, 뭣하러 저렇게 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하지만, 그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은 곧 다가올 것이라고 나는 믿어.
곧 다가올 무더운 여름, 잘 지내길 바라. 

서윤 드림.


정영찬 찍고, 전서윤 씀.

*김형로, 광주 시민 10명 중 7명, 5월 불안 '오월 증후군' 여전, <노컷뉴스>, 20170523,
http://www.nocutnews.co.kr/news/4788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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