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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ul 24. 2017

 당신이어서 고맙습니다

 문진, 김혜영부부

2017년 6월 28일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은 오늘로 문을 닫는다. 그리고 오늘 기억공간의 처음을 기억하는 부부를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가기 전 돌아본 공간은 늘 언제나 그 자리의 햇살로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분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를 한참을 생각하며 선흘리를 빠져나와 복잡한 제주시 파인땡큐로 향했다.

파인땡큐에서 나를 너무 밝게 맞아 주시는 두 분, 하이톤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나에게  살짝 건네주시는 커피 한잔은 오늘은 그냥 저희랑 차 한잔 해요, 라는 인사말로 들리는 듯했다.

사실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났다. 그때도 저에게 이렇게 커피 건네주셨던 분, 아마도 그날이 기억지기로 처음 출근? 활동? 한 작년 4월 일요일 어느 날 이였다.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끼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주셨던 문진님 그리고 작년 6월 벨롱장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도와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민선 씨 이리와요"라고 먼저 잡아주신 김혜영 님. 이렇게 처음을 알려주셨던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글쓴이- 모모씨


기억공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어요?


김혜영 님 - 세월호 1주기 때쯤일 거예요. 사실 전 세월호 사고 났을 때 눈물도 많고 그래서 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나고 그때 쯤인가. 혹시 세월호 1주기 행사를 하지 않을까? 하고 찾고 있는데 제주도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를 한다는 포스터를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찾아봤더니, 공간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도 알게 돼서 남편(문진 샘)과 함께 그 공간에 우리 도울 일이 없을까, 하고 찾아가기도 했죠. 그런데 우리 도착했을 때는 공사 시작 전이었어요. 그리고 우사에 빈 공간과 목재만 달랑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인가? 아마 1주기 행사 때 다시 갔었지 아마도.


문진 님 - 그때 사실 아내는 일을 가고 나 혼자 기억공간에 가야 했어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거문오름에서 내려서 가까우니까 걸어가면 될 거야' 하고 가는데... 처음에 올 때 운전을 하고 와서 가깝다고 느꼈는데, 그런데 막상 내려서 걷다 보니 아닌 거에요. 그리고 한 시간쯤 걸었나? 그렇게 도착을 했더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사실 처음 예상을 했을 때는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였어요. 그래서 내부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행사만 둘러보고 돌아 왔어요.


그런데 버스로 가려고 하니까 어릴 적에 내가 알고 있던 중산간 버스들 노선이 바뀌었죠. 그래서 버스를 타려고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죠. 두 시간이면 봉개까지는 걸어갈 수 있겠다. 생각하고 기억공간에서 걷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걷다 보니 1시간이 좀 지난나. 글쎄 도착한 곳이 와흘!


그리고 이정표에는 봉개 12km!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나 좀 데리러 와줘"라고 했죠.

그렇게 다시 차를 타고 제주시청에서 1주기 행사에 참여하고 시청에서 탑동까지 걷는다고 했지만 오늘 너무 긴 시간 걷다 보니 거기까지는 차마 가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 - 정영찬(러브스토리즈)

그렇게 두 분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제주시에서 버스 타고 거문오름, 거문오름에서 기억공간까지 한 시간 걷고 그리고 기억공간에서 와흘까지 1시간을 걷고 결국 제주시로는 아내의 차로 이동했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걸어야 만나는 기억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알고 있던 사실은 1주기 행사까지 기억공간의 황장군(황용운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는 기막힌 인연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다시 방문하여 두 분은 아이들의 방 전시를 볼 수 있게 되었고, 빨간 모닝의 주인 황장군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 문진 님에게 받았던 세월호 노란 리본 목걸이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문진 님 - 혹시 울산에 '리보니 아빠'라고 알아요? 노란 리본을 만들어서 서명운동 때 나눠 주고 있잖아요. 그래서 나도 단순하게 무언가 만들어서 나눠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북촌기행이라는 팀에서 노란 리본 펜던트를 500원에 판매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펜턴트를 달아서 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해서 펜던트 목걸이를 2주기 행사 때 나눠주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세월호 관련 행사 때마다 그냥 나눠 주자, 라고 생각해서 만들었던 건데 우리가 6월에 벨롱장을 나가게 되면서 제품을 만들어 판매까지 하게 되었지요. 처음에 만들 때는 아들이 요새 운동화 끈으로 만든 팔지가 있다고 동영상을 보여 주는 거예요. 그래서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이 매듭 저 매듭 하면서 만들고 있는데 아내 지인(교회 친한지인)이 십자수를 한다고 사둔 실이 많다고 주신 거예요. 처음에는 이렇게 까지 반응이 나올지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새 나도 집에 돌아오면 팔찌를 만들고 있는데 편안한 자리. 편안한 각도, 편안한 위치를 나름 찾게 되었어요. 나는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돌아와서 아들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기 전 한 시간 동안 팔찌를 만들고 그리고 그 후 JTBC 뉴스룸을 보면서 노란 리본을 만들어요. 지금은 파인땡큐에서 만들고 있어요 .


사진출처 - 문진님 페이스북

김혜영 님 - 그렇게 팔찌를 만들게 되면서 벨롱장, 토요일 시청 서명운동 등 활동도 많아지고,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며칠 전인가 둘이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기억공간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간에  뭐했을까?" 하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사실 토요일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인데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몇일 전  딸아이가 토요일에 그러더라고요. "또 나가요?" 라고 딸아이는 올해 고3이에요. 그래서 평일 저녁에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토요일에 같이 밥도 먹고 해야 하는데 사실 활동이 많아지면서 아이들과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문진 님 - 사실 리본도 딸아이 때문에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고3이 되면서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율학습을 11시까지 하게 되면서 그 시간까지 깨어있지 않으면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더라고요. 제가 아이들 잘 때 나가서 아이들이 들어올 때(10시-10시반)는 보통 잠을 잤거든요. 일주일에 한번도 볼까 말까 하는거에요. 그래서 아이가 들어오는 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그때부터 리본을 만들기 시작한거죠. 하하하하


대화의 내용 중에 이런 말씀도 해주셨다. "남편이 밥은 집에서 다 같이 먹어야 식구다"라는 말을 한다라고, 밥? 식구? 가족? 뭘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리고 부부는 늘 아침에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하는 딸에 뒷모습을 보았고,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딸아이를 맞이하고, 저녁이면 네 가족이 도란도란 식탁에 앉아 오늘 하루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딸아이를 만나기 위해 시작한 리본 만들기, 세월호 팔지 만들기 등은 결국은 아이들 때문이였다. 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 어쩌면 처음도 끝도 세월호의 부모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부부는 참사 당일에 기억을 기억해 본다.   



문진 님 - 그러고 보니 세월호 침몰하는 첫날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


저는 음모론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나는꼼수다' 라는 팟캐스트 채널을 들으면서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음모론이 현실로 일어나겠는데...라고 생각했죠.

제가 세월호를 처음 접했을때 아마도 점심쯤이였어요. 배가 살짝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사실 난 군생활을 해군 방위 취사병으로 했어요. 가끔 해군들 훈련 나갈 때 같이 가기도 하고, 상사에게 군함등 배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기고 했죠. 그래서 당연히 다 구출했을거라 생각 했는데 저녁에 본 세월호는 침몰했죠.


나는 보는 순간, 일부러 빨리 잠기게 했다는 생각을 했죠.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세월호 참사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파 한적이 없다. 사람들이 아파하는 건 사실 우리는 살인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았다라는 것였어요. 그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도 세월호 참사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 같아요


김혜영 님 - 사실 난 지금도 생생해요 . 창문에 구명조끼 입고 기대고 있는 아이들이 생생히 생각나요 . 이 시대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충격적이였어요. 그리고 그 일은 정말 영화, 소설 등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였어요. 이 모든 상황이 상황이 머리로는 되는데 가슴은 인정이 되지 않는거에요.


그래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려 활동등을 하게되 되지만 우리는 세월호를 보고 시작했고 , 아이들을 보고 시작하게 된거에요. 그래서 이번 마지막 '세탁소' 전시가 마음이 아파요. 공간을 정리하게 되면서 그 짐을 다 창고에 넣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아이들이 쉴 만한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또 창고에 가둬야 한다는 것이, 또 이 아이들이 떠돌아 다녀야 한다는 것이, 정착하지 못한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요.



사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세탁소' 전시 하나하나, 그전에 전시했던 '고래의꿈 304' 고래 하나하나가 나에겐 아이들이에요 . 그래서 마치 아이들이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였어요. 나에게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아이들이 어디에도 쉴 공간 없이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어서 그저 미안할 뿐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힘들게 말을 이어가는 두분, 처음 빈 공간을 마주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공간을 보고, 이번에는 또 빠져야 하는 공간을 보는 분들이였다. 정말 오늘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 그리고 그 안에 짐은 모두 창고로 보관되어 진다.


사진 출처 : 문진님 페이스북

그래서 묻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쉴 공간,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등 그 다음은 어떤 비젼을 가지면 좋을까요 ?


김혜영 님 - 기억공간의 비전이 될지 우리의 비전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공간이야기가 오고 갈때  지금의 * 파인땡큐(지금 사용 공간)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세월호 노란 리본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 지금 한 3주 정도 진행을 했는데 매주 오는 초등학생들이 있고, 중고등학생들도 지나가다 내용을 보고 들어오기도 한다. 초, 중, 고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뭔가를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 그 무엇을 줘야 할지는 마지막 전시였던 세탁소 전시를 보게 되면, 티셔츠에는 아이들의 얼굴과 꿈이 그려져 있고, 하단에 아이들의 꿈이 적힌 택이 있다. 그 전시를 보여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어요.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아이들도 만나고, 그 전시를 본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도 나눠 볼 수 있고, 그렇게 청소년들을 만나고 함께하고 소통의 공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지금 어쩌면 그게 저희가 그리고 있는 비젼이 아닐까 해요

  

Q: 그럼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뭘까요?

A: 세상이 사회적 약자에게 귀를 귀 기울여야 한다면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줘야 하지 않을까요

Q: 그렇다면 가르친다는 건 뭐예요?

A: 내가 가르친다는 건은 내가 행동한다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행동하는 것, 그게 내가 가르친다는 것이다.


두 분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난 몇 달 간의 나의 고민인 "진짜 어른이 있을까? 진짜 어른이 뭐지?" 라는 질문에 답을 해주신 것 같았다. 어른이 숫자로만 읽히는 어른이 아닌 행동하는 어른,  그리고 아이들에게 현재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도 그리고 쭉 노란리본 나눔은 어떤 의미인가요?

문진 님 - 1차원적으로는 아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의미지만, 지금은 저항의 표시다.

김혜영 님 - 난 공감하고 함께하는 용기? 리본을 달고 다니는 용기. 함께 한다는 용기. 함께 하기위한 용기. 공감하기위한 용기. 나에게는 이런 의미인 것 같아요 .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녀오는 아이를 바라보는 두분의 마음, 세월호 창에 기대 '살려주세요' 하는 아이들을 바라본 두 분의 마음, 어쩌면 두분이 활동하는 것에 있어서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가 잘 해야 하는 이유이자 꼭 함께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긴 담소같은 시간은 오히려 인터뷰를 하러 간 내가 큰 위로를 받고 돌아온 시간이였다.
오늘 이 시간에 만날수 있는 분들이 두 분이어서 감사합니다.


글쓴이 - 모모씨 / 사진 - 정영찬(러브스토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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