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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28. 2018

나 그리고 나

[05_수필]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아침마다 제주가 변하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제주는그토록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딜 가든 공사 소음이 들린다. 책, 영화 그리고 TV가 제주에 대한 로망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 폭포에 몸담으려는 이들로 제주는 지금 미어터진다. 로망은 편집되기 마련인데도. 


서울은 나의 로망이었다. 서울은 반짝거리고, 높고, 빨랐으니까. 난 그때 그런 서울을 로망으로 삼고 마음에 두고두고 품었다. 홍대거리도 가고 싶었고, 어느 쪽으로 이동하는지 모르는 한강을 관찰하고 싶었고, 종로에 빌딩들이 즐비한 거리도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 표는 내게 어떤 화폐보다 소중했었다.


공사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길이 사라질까 무섭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 근처에는 호텔이 세워졌다. 바다 전망이 아름다운 그 호텔은 호황이다. 누군가 다이빙을 하다 새끼발가락에 깁스한 것, 빨래하던 모습, 텐트를 치고 야영 아닌 야영을 하던 모습들은 과거가 되었다. 듣고 봐왔다. 사라진 그곳의 추억을, 풍경을, 그리고 빼앗김을.


지금은 서울이 싫다. 반짝거림은 시도 때도 없어 눈만 아프고, 건물들은 너무 높아 목이 꺾어질 듯했고, 너무 빨라 다리는 바스러질 듯했다. 줄지어 가는 개미 같은 지하철 노선도를 다 외워갔을 즈음, 제주에 로망이 생겨버렸다. 제주로 가는 화폐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제주에 와서 별생각 없이, 무자비하게 게스트하우스 짓는 이들이 정말 싫다. 한적한 동네라며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다면, 그 주변의 상권과 동네의 분위기는 묵살 당한 채 자본의 논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자리 잡아 버린다. 밤의 고성방가, 빈부의 격차가 드러나 어수선해져 버린 동네, 책임은 누가 지나.


제주에 오니 곧 독립해야 할 나이였다. 제주에서 가장 돈 벌기 쉬운 방법은 관광산업에 몸담는 것이었다. 요컨대 관광단지가 아닌 시내에서 주스 가게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옆 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을 많이 팔아야 내 주스 가게에 올 것이고, 앞의 식당이 잘 돼야 나도 돈을 벌 것이다. 지금 제주에서 대다수 고객은 관광객이다. 자국에서 식량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 이 문득 떠오른다. 이미 많이 지나와 돌이킬 수 없는. 이따금 미래를 생각할 때면 ‘게스트하우스나 할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제 제주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런 것밖에 없으니까.


아름다운 섬 제주, 라며 그 아름다움들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것이 아프다. 폭포처럼 폭력적으로 무한정 떨어지기에 순간적으로 섞이는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 물과 기름이라 분리되어버리는 관광, 을 내가 달게 볼 순 없는 듯하다. 여행한다는 이들도, 내 눈엔 마찬가지로 보인다. 컴퓨터에 앉아 있는 어떤 이들은, 그들 모두를 아라비아 숫자로 보기 때문에.


관광객이 내게 길을 묻거나 하면, 마치 서비스센터의 직원처럼 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들이 안전하게 여행하다 그들의 둥지로 다시 돌아가기를 등지고 나서 소망하기도 한다. ‘하긴, 제주가 예쁜 구석이 있지.’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머금기도 한다. 나도 감동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머금는 감동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버스가 개편되며, 뚜벅이인 난 몹시 편리한 생활을 한다. 일단 버스가 교통체증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그 버스 개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공항을 경유하는 버스가 늘어났고, 급행도 생겨났다. 이건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자꾸 물음이 생긴다.


난 서울이 싫어서 탈출구를 찾아 왔는데 제주가 결국 서울이 되어간다. 밤은 반짝거리고, 치열해져 가고, 바퀴 소리는 더 많이 난다. 안온한 곳은 하나둘 북적거려, 쉬러 가지도 못한다. 난 이제 어떤 화폐를 들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나는 안다. 현재 제주의 관광산업에서, 삶을 사는 이들의 지속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나의 탓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단지 그것을 단절시키고서 독립적으로 관광산업과 동떨어져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나는 안다. 그것이 나의 태만으로 인한 편집과 핑계라는 것을. 


글쓴이.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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