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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28. 2018

당신의 생리는 안녕한가요?

[04_칼럼] '안다; 않다' 


작년 여성환경연대는 강원대 김만구 교수의 연구팀에 의뢰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1개 생리대 브랜드의 유해성을 조사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11개 생리대 전부에서 발암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학물(VOCs 10종)이 검출됐다. 


인터넷에서는 기사와 함께 증언들이 나왔다. 질 가려움증, 자궁근종, 난소혹이 급격히 커져 수술받았다는 이야기, 특정 생리대를 쓰고 생리통이 심해졌는데 생리대를 바꿨더니 생리통이 사라졌더라 하는 이야기까지. 그동안 믿고 사용했던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나왔다고 하자 분노한 여성들이 자신의 몸이 대상이 된 결과들을 인터넷에 내놓기 시작했다. 

분노가 공유되고 대안 제품들이 떠올랐다. ‘천연펄프 흡수체’, ‘100% 유기농순면커버’를 내세운 외국 제품과 면 생리대였다. 그러나 구입이 힘들었다. 유기농 일회용 생리대는 그 해 한국 여자들에게 인터넷 쇼핑을 하게 만든 필수품이 됐지만 물량이 따라가지 못했다. 바로 품절돼 버리는 까닭에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고수하던 여성들 중 일부는 면 생리대를 찾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환경과 몸에 관심 있고 실천력 있는 소수 여성들만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면 생리대는 손빨래를 해야 하고, 외출 시 사용했던 생리대를 가방 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등의 불편함이 있어 잘 안팔리는 물건이었는데 발암물질 앞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것도 재고가 없어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독성물질 생리대 때문에 분노하기 전 해인 2016년 5월, 그 때는 생리대 때문에 슬펐다. 국내 생리대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유한킴벌리에서 다음 달부터 신제품 생리대 가격을 8% 올린다고 발표하고 난 이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글들이 SNS를 통해서 쏟아졌기 때문이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생리 때가 되면 신발 깔창을 벗겨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 일주일동안 아프다고 학교에 오지 않아 교사가 걱정이 돼 학생 집에 방문했더니 생리대를 사지 못해 수건을 깔고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여자청소년들이 생리대 구입과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건강한 어른이 돼 간다는 몸의 신호인 생리가 그들에겐 고통과 수치였던 것이다. 

소녀들의 상처가 연일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고 기사들이 쏟아졌다. 곧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발빠르게 대응한 어느 지자체에서는 기사가 쏟아진 다음 달부터 저소득층 여자청소년들을 위해 생리대를 무상 지원했고, 정부에서는 그 해 10월부터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만 1년도 되지 않아 유해물질 생리대가 이슈에 올랐고, 지자체와 정부에서는 지원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마트에 주춤 주춤하며 진열돼 있던 생리대는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식약처에서 ‘생리대에 유해물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인체에 영향을 주기에는 아주 미미한 양이어서 괜찮다’고 발표한 이후 부터였다. 

유해물질 생리대 부작용을 같이 읽고 퍼날랐던 여성들 중 일부가 식약처의 발표를 은근 환영했다. 유기농 생리대는 비쌌고, 면 생리대는 너무 불편했다. 카드 할부, 대출금 등 지출해야 데는 많은데 벌이는 고만고만해서 갑자기 좋은 생리대를 쓰자고 그 비용을 늘리자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면 생리대는 손빨래 할 시간이 없었다. 현대 여성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가사일을 한다. 잠잘 시간도 빠듯한데 면 생리대 손빨래 시간은 타임 푸어인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부르주아 같은 시간의 영역이다.


식약처의 발표 이후 잠시 중단됐던 생리대 무상 지원이 계속됐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으로 불안에 떨며 유기농 생리대를 원하는 소녀들도 분명 있을테지만 깔창생리대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생리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미미한 양의 발암물질을 매달 일주일씩 차고 다닐 것이다. 안전 기준이 느슨한 걸 알면서도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생리가 안녕을 고할 때까지 안녕하길 바란다. 


글쓴이.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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