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ㅣㅇㅓㄱ Jan 28. 2018

'안다'와 '않다'

[03_사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 畜之而非徒畜也)”      


유홍준 교수가《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1권 머리말에 인용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 이 문장은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의 것이다.

     

무언가 애정을 가지고 보면 더 깊이 알게 되고 달리 보게 된다는 뜻이겠다. 사물이나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식이나 태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새삼 확인했다. 피해자의 가슴과 눈으로 바라보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이 참사와 그 피해자들을 대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태도가 얼마나 확연히 달랐던가!      


유한준의 문장 순서를 다음과 같이 거꾸로 정렬해도 썩 괜찮은 뜻의 새 문장이 된다. 보게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전과 다르게 대하지(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를, 특히 그 가족들을 만나보고 알게 된 이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게 되는 것이 이치다.     


 “눈 있는 자 와서 보라(ehi-passika)”_석가모니   

   

깨달음을 얻는 석가모니가 제자에게 던진 첫마디다. ‘와서 보는 것'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진리 혹은 진실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꼽히는 것 같다. 성경에서 예수를 만난 제자가 그 친구에게 예수를 함께 따르자고 권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말도 ‘come and see!(와서 봐!)’였다.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한국에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는 격언이 전해오고 있다.          


현장에 와서 보고 알게 된 이는 부지불식간에 증인으로서의 소명과 책무를 지니게 된다. 기억하고, 가만있지 않고 행동하는 이들에 의해 진실은 드러나고 알려지고 행진한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너희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 _ 신약성서 중에서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 누구나 깨닫는 것은 아니다. 시인 고은은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기억하는 것과 잊는 것, 소중한 무언가를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경계가, 사람의 관점과 처지에 따라 나누어 질수 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짤막한 절창으로 형상화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그 꽃, 고은>    


내려갈 때야 비로소 낮은 곳에 피어난 꽃, 그 작은 존재들이 지닌 저마다의 존엄함에 온전히 눈을 맞출 수 있지 않겠는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은 후, 일본의 성격파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자세가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참사를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한다. _ 기타노 다케시, 영화감독 겸 배우   


참사의 피해자, 그 이들, 그 존재들 각각의 고통에 인간적으로 다가서지 못하는 한, 우리는 재난이 일상화된 세상을 온전히 볼 수도, 알 수도, 기억할 수도, 그리고 그 비극의 무게와 굴레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을지 모른다.


글쓴이,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작가의 이전글 녹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