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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28. 2018

알지 못하고 행하는, 사랑

[06_리뷰] 문라이트(moonlight, 2016)

Moonlight(2016)


알지 못하고 행하는, 사랑(not knowing, but doing; love)


안다고 해서 하는(doing)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른다고 않는(아니하는) 것 또한 아니다. 

때론 사랑은 알지 못하고 행한다. 


*리틀과 샤이론, 블랙은 모두 동일인물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달라집니다.


리틀을 거둬준 후안과 테레사의 사랑이 그러했다.

후안은 길거리에서 알지도 못하는 꼬마를 데리고 와서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들은 그 꼬마가 자라서 청소년이 될 때까지 마치 부모처럼 돌봐준다. 그들은 리틀에게 “네가 힘들 때 언제나 쉴 곳이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후안과 테레사가 ‘왜’ 리틀을 보살펴주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보살피는지, 왜 사랑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알지 못하며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질 때, 비로소 달빛을 쫓아 달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들린다. 그리고 그 아이는 세상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다.


"You are in the middle of the world, man"


샤이론의 첫사랑이 그러했다. 

샤이론이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후안은 그냥 알게 된다고 답한다. 성 정체성은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함께 드러나는 것이라고 후안은 생각한다. 

우리의 첫사랑도 그러했다. 알기 전에 느꼈고,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샤이론에게 다가온 사랑은 따가운 모래밭에서 따뜻한 월광과 부드러운 바람이 안아주는 오묘한 느낌이다. 샤이론은 울다 지쳐 자신의 슬픔을 들어주는 케빈에게 몸을 내준다. 어린 샤이론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가슴이 요동치고 소리친다. 지금 그에게, 아는 것은 중요치 않다. 지금의 느낌과 감정이 있을 뿐이다. 달빛 아래 샤이론은 새파란 감정을 느낀다.


블랙의 화려한 삶에는 사랑이 비어있다.

샤이론은 폭력사건으로 소년원에 간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마약 거래에 손 담는다. 그때부터 그는 블랙으로 불린다. 자신을 거둬준 후안과 닮은 모습을 하고 좋은 차를 타며 많은 돈을 벌어 자신의 세계에서 인정받는다. 그러나 블랙의 얼굴에는 어딘가 공허함이 자리한다. 그의 공허함은 사랑이 없는 것에서 기인한다. 블랙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세상에 알리지 않는다. 자신을 숨기는 것이다. 세상에 속하기 위해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흐를 때까지 그는 사랑을 찾지 못한다. 블랙은 시린 얼음물에 얼굴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비어버린 그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모른 체한다. 그러나 그런 그를 깨워주는 것 또한 사랑이다. 10년 만에 걸려온 친구이자 첫사랑인 케빈의 전화를 받고 그는 예전의 자신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찾아, 자신을 찾아서 떠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존재한다.

존재와 사랑은 긴밀하다. 우리가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의 이유나 대상을 알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다.

사랑하지 않는 것 또한 존재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존재로서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알지 못하고 행하는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리틀의 삶의 궤적을 바꿔놓고, 샤이론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며, 블랙의 세상을 부수고 재창조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어떠한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송장처럼 하루하루를 살다 갈 뿐이다.


달빛 아래선 모두는 blue야.


사랑이 부족하면 삶은 바스스 부서진다. 나의 삶뿐 아니라 우리의 삶 또한 무너진다. 모든 관계는 사랑이 있어야 뭉쳐놓을 수 있다. '너'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나라도, 국가도 모두 서로 간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스스 부서질 수밖에 없다. 혐오라는 단어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 서로서로의 존재를 빛내기 위해 오늘 하나의 작은 사랑을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 이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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