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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Apr 22. 2018

4, 03.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평생 모를지도 모르는

[05_minifiction]


마을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사나이는 내리자마자 둔탁한 소리가 났던 곳을 살폈지만, 마을버스 외관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광장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바삐 옮겼다. 사나이는 현기증이 일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가시거리가 짧아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은 잿빛 먼지 속에서 차원을 이동해 나오는 것 같았다. 사나이는 어지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로수에 손을 짚고 섰다. 한쪽 발이 잘린 비둘기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정류장에 비치된 쓰레기통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카악」


버스중앙차로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 중년의 사내가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건너편에선 사람들이 지하철역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걷는다기보다 등 뒤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 같았다. 사나이도 물살을 타야 했다. 사나이는 지나온 길 쪽을 뒤돌아보았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벚꽃이 환하게 피어있었다.


「아까 그건 뭐였을까?」


사나이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노란 스카프를 고쳐 매며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어깨를 들어 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사나이를 지나쳐 횡단보도를 향해 걸었다. 사나이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죽었을까?」

「축구공 같은 것일 수도 있지.」

「터널에 웬 축구공?」

「누군가 놀다가 공을 멀리 찼는데 우연히 우리가 탄 마을버스에 쿵 하고 부딪힌 거지.」

「말도 안 돼.」


여자가 남자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너는 무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말이 안 되잖아.」

「이 세상에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남자는 미간을 찌뿌렸다. 경유차 한 대가 검은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횡단보도 근처에 멈춰 서 있었다.  맞은편 오래된 5층 건물 외벽에 상호가 적힌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들개일 거요. 그쪽 야산에서 들개 무리를 봤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으니」


침을 뱉던 중년의 사내가 둘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자 파란불이 켜졌다. 고개를 돌려 중년의 사내를 쳐다보던 그들은 광장으로 치달을 물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군중 속에 섞인 그들은 곧 아무도 아니게 됐다. 사나이는 외투 가슴에 묻은 얼룩을 발견하곤 내디뎠던 발을 걷었다. 갑자기 멈추자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사나이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사나이는 인파의 힘 때문에 앞으로 점점 나아갔다. 바람이 불자 사람들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얼룩은 언제 어디서 묻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나이는 헛구역질이 나오는 바람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람들이 사나이를 피해 좌우로 갈라졌다. 몇몇은 사나이를 흘끔거렸다. 사나이가 흘린 침이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침에서 비린내가 났다. 바람에 흩날리던 벚꽃잎 하나가 흥건히 젖은 사나이 손등으로 내려앉았다. 터널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사나이는 걸음을 옮겼다.


글쓴이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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