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ㅣㅇㅓㄱ Apr 22. 2018

4, 안녕 세월호

[04_인터뷰 수필]

  안녕, 세월호.      

  안녕, 지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반말을 하고 있어. 사실 이름을 부를 때 상하관계의 호칭이 아닌 수평으로 부르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은 이름이 주도야. 나는 그 사람을 학생이라 해야 할지, 청소년이라 해야 할지, 열여덟 살 여자라고 해야 할지, 시인이라고 소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암튼 주도는 나보다 한 참 어린데 자꾸 날 부를 때 이름만 불러. 그래서 나도 그 사람의 성은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고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가 사람 이름이라면 성이 제고 이름이 주도잖아. 암튼 주도는 제주도랑 이름이 같아. 성은 다르지만.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어. 과연 주도에게 무엇을 배웠는가에 대해서 말이야. 주도는 열다섯 살에 세월호를 만났어. 그 후 주도는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 교과서에서 몇 문단으로 배우는 4.3 항쟁과 광주항쟁을 읽으며 걸어가는 민주주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향해 걸어가고 있어. 제2공항 반대 천막에서, 성주에서, 제주 시청 벽화 앞에서, 그러니까 나는 주도에게 가치 있는 것을 부르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는  것 같아. 사실 지윤이 떠오른 건 주도가 나에게 세월호와 관련된 글을 부탁했을 때였어. 난 두려웠어. 난 시인이지만 세월호와 관련된 시를 한 편도 발표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야. 어떤 곳에서도 세월호와 관련된 주장을 펼쳐 본 적이 없어.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거짓말하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 만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아 할 말이 없었어. 주도는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 열다섯 살이었지만 나는 어른이었거든. 주도는 세월호 사건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겠지만 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였기 때문에 잘못된 세상을 이끌어 온 공범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 묵비권을 행사하는 죄인처럼 나는 세월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사실 시로 쓰고 싶은 적도 있었어, 혼자 쓰는 일기장에는 서두르지 않고 나의 슬픔을 기록 해 두긴 했어, 하지만 아무에게도 보여 준 적 없어 까분다고 할까봐. 네가 왜 슬프냐고, 까분다고 말을 할까 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나는 원고청탁을 받은 후  지윤의 첼로 음반 1집 ‘기도하는 첼로’라는 음반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어. 나도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지윤은 나에게 죽음을 말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야..

 까불다가 무슨 뜻인 줄 알아? 지윤은 첼로를 아이처럼, 십자가처럼 등에 업고 다니며 공연을 하고 연주를 하는 사람이니 잘 알 거야. 연주회 분위기를 살리려고 까부는 경우가 있었을 테니까. 흔히 사람들은 국어사전에 나온 의미처럼 ‘까불다’라는 뜻을 가볍고 방정맞게 행동하는 것이라 이해해. 하지만 까불다의 어원은 오래전 곡식의 뉘나 돌멩이를 고를 때, 키에 곡식을 올려놓고 위아래로 흔들어 잡물을 날려 보내는 동작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 그렇게 키질을 하는 것을 ‘까부르다’고 했는데 여기서 ‘까불다’라는 말이 생겨났어. 껍질이 바람에 화르륵 날아가는 모습들, 정처 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철없고 경망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지.

  사실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 어떤 떤 슬픔과 울음과 분노를 이야기하더라도 나의 말은 바람에 분분분 날리는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어. 슬프고 힘들다 까불더라도 내 슬픔이 누군가의 식량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세월은 흘렀어, 나는 그 세월을 운동화 끈 묶듯이 입을 꽉 다문 세월이라고 말하고 싶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세월호 이후의 생을 한참이나 걸어왔어.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등 굵직굵직한 사건도 있었지만 그런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수평선 같은 지평선과 같은 짙은 감수성이 생겼어. 정확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지점의 수평선처럼, 환청 같은 경계를 알게 되었어. 나의 슬픔이 아닌 남의 슬픔을 위로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이야.

 하늘과 바다, 하늘과 땅,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언어가 아닌 소리를 듣는 사람들, 난 사실 내 운동화 끈을 꽉 매고 어디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가끔 지윤이 내가 운영하는 작은 서점에 와서 “이곳은 곶자왈 같아.”하는 말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졌어. 어디서부터 시작된 지 모를 나의 슬픔이 지윤의 따뜻한 말로 위로가 되는 것 같았어.

 우도에서였던가. 지윤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밤, 난 처음으로 지윤의 첼로연주곡을 들어보았어. 난 음악맹이라 연주곡을 한 번도 귀 기울여 들어 본 적이 없거든, 첼로는 참으로 놀라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지윤은 그날 연주를 들려주며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했지. 갓 죽은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고와서 대리석 조각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어. 죽음이 참 고운 것이구나 생각하며 “아버지 참 곱다”고 중얼거렸다고 했지. 사실 난 그 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계시다 돌아가셨어. 그 옛날엔 중환자도 보호자가 간병했었잖아.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간병했지. 오토바이 사고로 들어온 피투성이 환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심장병 어린이, 경마를 하다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아주머니 등 다양한 죽음을 많이 목격했어. 죽음에 이른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고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에 이른 사람들 주위는 연주를 하지 않고 놓여 있는 악기처럼 아주 침착하지, 죽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멈추고 있는 악기같이 참 침착하고 모두 고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지윤의 딸은 학교에 가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지. 며칠이 지나 딸을 찾았을 때 딸은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파 더 이상 고등학교에 다닐 수가 없다고 말을 했어. 그리고 오랫동안 학업을 포기하고 방에서 웅크리고 있는 딸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시간 동안, 지윤은 딸과 세월호 유족, 아니 세월호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첼로를 연주하며 기도를 했다고 말했어.  지윤, 나는 지윤의 음반을 들으며 위로를 받아. 첫 곡을 들으면 바위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둥 둥 둥 , 북소리가 심장 소리처럼 들리기도 해. 유언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읽히거나 들려줄 문장 한 줄 없이도 우리는 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가 있어. 세월호 사람들의 이야기를,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아무 말 못했지만 우리는 세월호 이후 각자의 방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자주 서성거리기만 했어. 나는 지윤처럼 연주를 하고 싶어. 나도 막 시를 쓰고 싶고 시로 까불고 싶다. 나의 시도 지윤의 연주처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지윤, 고마워. 지윤의 음반을 듣고 있으면 죽음이란 다만 연주를 쉬고 있는 악기와 같아서, 단 한 번이라도 그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그 목소리를 연주하고 상상 할 수 있지, 지윤의 음반이 play 되고 있지 않더라도 내 심장 근처에서 연주는 재생되듯이, 지윤, 감사해. 나에게 CD 열 장만 팔아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물할게. 아마 주도에게 맡기면 알아서 필요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필요한 곳으로 가져다 줄 것만 같아서, 그럼 안녕. 우리 다 함께 슬픔을 까불자, 우리가 슬퍼하는 그 공간에 슬픔이 나눌 수 있는 식량으로 모이는 그날까지 우리 함께 까불자.                             


                            



글쓴이 - 김신숙(시인)

작가의 이전글 4,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