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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Apr 22. 2018

4, 꽃

[02_minifiction]

 4월 초입니다.     

 

꽃은 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란 걸 할까 힘껏, 혹은 보다 조금 더한 강도의 간절함으로 꽃잎을 암술과 수술과 꽃받침을 하나하나 도려낼까 아플까 그건 괴로울까 수많은 동치들의 병렬, 꽃들은 떠 있습니다 언제나 비행하기 때문입니다.삶은 열매보다 꽃이라고 합니다. 열매는 먹으면 달기라도 하지, 꽃은 먹지도 못하는 것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나요? 꽃잎이 잠기고 말았어요     

 

4월 중입니다. 그들은 4월을 싫어합니다. 4월이 일어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유독 붉고 깊게 일어나는 4월, 중에 당신은 이 글을 보고 있습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봐라. 꽃은 식물이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야. 꽃잎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건 곤충, 또는 생식에 필요한 여러 수단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고. 기껏해야 한두 달 피어있는 거에 의미부여 할 필요 없다. 꽃이 폈다고, 어쩌라는 거냐. 꽃이 졌다고, 어쩌라는 거냐 나보고.



 꽃잎들은 바람의 모양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건지. 그 4월, 학생이었던 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놓고 밤낮 이 미터가량의 철근을 아래에서 위로 날랐으며, 너는 새벽 세 시까지 책 앞에서 전등을 끄지 못했다. 생각보다 우린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시민들은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하건, 저를 위하건, 그렇게 밤잠을 새워가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기려고 하던 우리였다. 우리는 세상의 모두였다. 데면데면하게 서로를 알아보되 멋쩍은 웃음만이 말 대신 자리하는 그런 관계들이었다. 술 같은 촉매가 들어가면 모든 울분을 태워버리는 매질이었다. 그 껍데기에서 사람들은 침묵한 채 모든 걸 견뎠다. 바위들이었다. 대리석이었다. 되고자 하는 핵 같은 감정은 무뎌져 우리 몸 가장 가운데에, 딱딱하고 작게 요로결석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것은 총알이었다, 누군가가 쏜 감정이 담긴 총알이었다. 우리는 과녁 어디쯤 위치한 무생물들이었다. 과녁판의 원은 색 분류 없이 모두 붉은색이었다.

      

 우린 빨갱이였다. 주동자였다. 그게 누구야, 주위를 두리번거릴 새 없이 주위 사람들은 쓰러져나갔다.      


 너와 나는 꽃. 피던. 힘껏, 그보다 조금 더한 강도의 간절함으로. 꽃잎과 암술과 수술을 도려내는. 비행하기 위해. 하지만 우리가 만든 건 천 개의 바람*이었어요.      

  

 날지 못했으므로 쓰는 것이다, 비행하지 못했으므로 이제야. 내 침묵은 진동일 수 없다. 지갑처럼 침묵, 혹은 굳은살처럼. 그들의 침묵을 뚫을 수 없어서 따라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어. 핑계가 좀 되느냐, 내 수술과 암술은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게지, 나는 그만큼의 죽음을 보아 왔고. 살다가 비로소 쓴다. 달리 죽일 방법이 없으므로, 읽는 너도 침묵하고 말 거다.


 4월 말입니다. 3일이 지나고 16일이, 19일이 지나면 5월입니다. 벚꽃은 길바닥에 깔려 사람들이 밟고 다닙니다.      


 그래서 너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나요? 네 바람을 만들었으니까요          





* 임형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세월호 추모 곡



글쓴이 - 장성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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