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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Apr 22. 2018

4,눈

[01_여는글]

 3월 말, 눈이 내렸다. 사람들도 당황했고, 차들도 당황했다. 발은 눈 속으로 푹푹 빠졌고, 정말 겨울인 듯 입김도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 순간을 과연 봄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 눈이 내린다면 세상은 새하얗게 포장되어 버릴 것이었다. 겨울인 듯 일상을 무사하게 보내며, 4월이 왔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해, 감정도 얼어붙을 터였다.


 제주대 입구에서 재촉하며 걸을 거고 물이 차다 했을 거고 눈 온다며 설렜을 것이며 피곤하다고 잠을 청했을 것이었다. 목이 꺾어져라 땅만 보며 걷고 목 마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눈물이라 과대 망상하며 열에 뻗쳐 뒤척이지 않을 텐데.



 어느 겨울엔, 불타는 눈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광장이 비좁아졌다. 뜨거운 눈으로 뒤덮인 그 광장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겨울을 여름으로 만들어버린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하염없이 비좁게 불타던 눈들은 잠깐의 승리에 뿔뿔이 흩어졌다. 겨울을 오래도록 여름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을까.


 시간의 섭리에 따라 그들의 눈은 다시 겨울과 같이 차가워졌고, 이제 우리에겐 일별조차 주지 않는다. 그때만을 매만지다 보니, 시간이 지났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 겨울처럼 뜨거운 눈들이 다시 뭉쳐 매 순간 만지며 버틸 기억을 하나 더 만들고 싶다.



 눈은 무참하게 다가오는 봄에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포장되길 바라던 나의 바람도 봄에 흩어져버렸다. 애써 막으려 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순 없는가 보다. 모두 봄이 한껏 준비되어 있는 듯 보인다. 난 한없이 아름다운 봄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노트북 너머 창밖엔 비를 깨는 날카로운 꽃이 보인다.


글쓴이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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