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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Apr 22. 2018

4, 내

[09_수필]


 4번째 봄이 왔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봄은 나에게 더 이상 ‘시작, 생명, 탄생, 따뜻함’이라는 단어로 기억되지 않기 시작했다. 계속 아팠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수시로 울컥하고 화가 났다. 때로는 지독한 무력함 속에 멍한 상태로 있기도 했다. 나에게 닥친 일도 아닌데, 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데 왜? 라고 스스로 질문하며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그 기억에서, 304명의 죽음을 TV로 목도하던 그 하루의 악몽에서.        


 종이로 만든 배라는 극단이 2015년부터 세월호 미수습자 어머니의 독백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 <내 아이에게>를 광주에서 초연하고 지금까지 올려오고 있다. 작년부터 나도 함께하고 있다.      


 학교에 도착하니까 나 같은 어머니들이 안절부절 소리치고 발을 동동거린다. 강당으로 올라갔더니 스크린에 전원구조라고 뜨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거기 있는 부모들이 다 박수를 치고 나도 박수를 쳤단다. 그럼 그렇지! 어서 우리 아이를 데려오자 (연극 ‘내 아이에게’ 중)


 그날, 2014년 4월 16일. 나는 아침에 일어나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YTN 뉴스를 틀었다. 당시 한창 중독되어 있던 핸드폰 게임을 시작했다. 얼마 안 지나 무심결에 TV 화면을 보다가 일순간 눈과 손이 정지했다. 뭐? 배가... 침몰?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부끄럽게도, 영화 <타이타닉>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 참 인상 깊었지. 그건 100년 전의 일이니까, 그때는 통신장비가 없었으니까, 거의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어. 지금은 2014년이잖아. 다 구조됐겠네. 제주 갈 때 배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되도록 비행기를 타야겠다.’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니 더 마음이 놓여 늦은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사망했다는 뉴스 속보가 뜬다. 그리고 전원 구조가 오보라고, 이게 무슨 일이냐? 갑자기 한 선생님이 생존자 명단을 칠판에 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우리 아이는요? 아이들은 괜찮은 거죠? 잘 모른다고, 저희도 잘 모른다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경이 출동하고 있다고, 진정하시라는 말 하나 마나 한 그 말뿐이구나. 어머니 아버지 학부형들이 그렇게 소리치고 그렇게 발버둥 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멍하니 내 귀 옆에서 폭탄이 터진 듯 그렇게 웽! 휘적휘적 밖으로 나가 토악질을 했다. 땀이 줄 줄 쏟아지는데 몸은 차가운 게 한기가 든다. (연극 ‘내 아이에게’ 중)     


 뭐라고? 전원 구조가 오보라고? 승객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고? 전원 구조할 예정...이라고? 배가 저렇게 기울고 있는데 4백 명이 넘는 탑승객들은 왜 갑판으로 안 나오고 있지? 수백 척의 구조 헬기와 배들은 어디 있는 거지? 구명보트 같은 배들 몇 개만 빙빙 돌고 있는데?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모순된 내용의 자막들... 그리고, 곧 세월호는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무심하고 잔인한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됐다.      


390㎞, 3시간 30분, 그리고 60만원 의 과속 벌금 스티커.
10시 50분 출발, 2시 20분 도착. 진도 실내체육관. 보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
 그렇게 너를 만나러 갔다. (연극 ‘내 아이에게’ 중)     

 그 오후는 그렇게 멈춘 채로 4년이 흘렀다. 아직까지 어떤 질문에 대한 답도 얻지 못했다. 나의 봄은, 거기에서 멈췄다. 기울어진 배가 바다 아래로 완전히 잠겨버린 그 순간에.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304명의 숨이 끊어지던 그 모든 순간을, 목격해버린 것이다.      


 세월호는 300명이 죽은 사건이 아냐. 한 명의 죽음이 300개 있는 것이지. 그 한 명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그리고 동생이 있고 오빠와 언니가 있지. 친구와 선생님도 있고 키우던 강아지가 있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그 한 명에게는 이렇게 소중하고 많은 생이, 삶의 가지가 같이 있는 거야. 그들은 이 모두를 죽인 거야. (연극 ‘내 아이에게’ 중)     


 정신을 차리자고 되뇌고 되뇌기 시작했다. 외면하지 않기로, 그들이 각자 뻗어낸 가지들이 나의 생과 만나고 있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4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2014년 4월 16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나갔다. 세월호 리본과 팔찌를 항상 가방과 몸에 착용하고, 팔에 노란 배와 20140416 글자를 새겼다. 매년 <내 아이에게>를 인권연극제 무대에 올려오고 있다. 앞으로도 매년 계속할 것이다. 세월호처럼 부패한 정권과 무능한 국가 폭력의 피해 생존자들, 그리고 차별과 혐오 배제의 문화 속에 밀려나고 죽어가는 소수자와 약자들(에는 나도 역시 포함된다)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옆 사람의 상처를 모른 척하지 않을게.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저 구석진 어둠들에게.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저 웅크리고 있는 상처들에게. 손을 내밀게. 그리고 친구가 될게. 그럴게. 그게 너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안다. (연극 ‘내 아이에게’ 중)     


 친구가 물었다. 이제 다 끝나버렸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과거에 머무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잊자고, 잊자고. 나는 대답한다. 세월호를 잊어버리면, 나도, 너도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고. 나는 슬픔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간이라면, 운 좋게 살아남아버린 인간이라면, 세월호에서 절규하며 죽어간 이들이 던지고 간 더 나은 사회로의 희망을 이뤄내기 위해 살아가야 함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세월호는 나다, 나는 세월호다.         



글쓴이 - 쭈야/인권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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