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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Apr 19. 2022

일상의 서정적인 문체

 

마을의 숨겨진 정원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취향이나 성품 같은 것들은  집터 안에서 꾸며진 정원이나 텃밭 같은 곳에서 알 수 있다.

한 줄 한 줄 단정하게 일 구워진 텃밭이나 작은 공간에서 개인만의 아지트처럼 꾸며져 있는 공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이라는 경계가 가깝게 느껴진다. 모르는 사람의 내면을 읽게 된 것처럼 정원이나 집터 둘레의 펼쳐진 공간들은 개인의 은밀한 일기장 같다. 


빌라 앞 주차장 앞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고양이 조심"이라는 푯말은 나에게 미소를 띠게 하는 누군가의 상냥한 마음이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인 캠핑의자와 나무 테이블이 놓인 소소한 즐거움이 권위를 얻고 또 다른 집 입구에 심어진 여리고 키 작은 꽃들을 보며 그곳 주인의 세심한 마음을 떠올린다. 그런 순간에 낯선 타인이라는 세계는 내게 점점 상냥한 속삭임이 된다. 무엇인가를 가꾸거나 단정하게 지어내고 있는 공간들을 완전한 사유지로 만들어 놓는 솜씨들은  마치 하나하나의 정체성처럼 개성 있는 것이 되어 나의 눈에 띈다. 누군가를 알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 안에 들어서는 일은 그 사람의 친절만 면을 먼저 발견하게 되는 설레는 일이다.  


나는 골목 안의 사생활들을 모은다. 빨랫줄에 말려지고 있는 생선과 텅 빈 구옥 마당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듯한 TV 소리, 이른 아침 클래식 음악소리에 아침을 준비하는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들, 그 소리들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일상에 관한 평범한 대화들을 골목에서 엿듣곤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이 시들어 갈 때쯤 한걸음 물러서서 타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삶이란 텅 빈 마당에서도 그리운 사람의 인기척이 서리는 것처럼 그것들 자체로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같은 속력을 내게 하는 연결된 별들의 이야기 같다.   

내가 모르는 타인들이 사랑했던 것들은 길을 걷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게 하는 여운이 깃들어 있다. 그 사람이 빚어내는 보이지 않았던 행동들이 집의 빛과 그늘 안에서  뛰어놀며 경계 안에 있는 정취와 생동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나는 마을을 걸어 다니면서 나의 내면처럼  관찰하게 되었다.


골목에 찬 선량한 기운들은 빈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들은 사람이 지닌 마음이라는 경계 안에서 태어난다. 그것이 돌이든, 잡초이든, 이슬이든, 음악이든, 붉은 동백이든, 고양이든 말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닮은 것으로써 그것들은 세상 속에서 처음 빚은 자의 지문을 지니고 대상 속에서 뻗어나가기 위해 잠시 고여있거나 골목 밖으로 뻗어나가는 흐름이 된다. 


내가 새로 이사한 곳은 저마다 모양이 다른 펜션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도보 10분 거리에는 포구와 둘레길이 겹쳐진 곳이었다. 휴양지 같으면서도 조용한 마을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이 마을에 나는 여행자처럼 골목들을 천천히 유람했다. 곳곳의 숨겨진 골목을 빠져 나가다 보면 아름다운 산과 바다와 평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모든 마을의 골목들은 저마다의  생활을 이어왔고 개인이 지닌 사생활의 공간들은 마을 안에 야생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가까운 대지위에서는 계천 물이 흘러가는 소리들이 들리고 콩밭에서 콩을 따는 할머니가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늘 그래 왔을 것이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방황하고 있던 사람의 마음이 골목 안 누군가의 온기를 입는 시간, 보이지 않은 것들이 자라는 소리가 익숙하게 내 마음 안에 공간을 일깨우며 다시 나의 일상을 두드리게 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나의 평범한 저녁이 골목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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