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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May 12. 2022

마음상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내게 닿을 땐 마치 모래 위로 파도가 부딪친 것 같다.

허공에 꽃비가 내리는 것처럼 잠시 고개를 들어 물질적인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의미를 찾는 일은 내가 즐겨하는 사색이었다. 추상의 세계는 힘을 주고 보면 안 되어서,  생각의 파도에 신발이 젖지 않도록 반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 자유가 서서히 내 마음을 차지하는 순간을 홀가분한 채로 감상하게 된다.  



나는 얼마 전부터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이든  오랫동안 소유하지 않기로 했다. 내게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마다 당면한 마음의 형태를 오랫동안 바라봤던 것은 그 속에 나를 헷갈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라 여겼다. 마치 그 속에  내게 오지 않아도 될 현실의 어떤 것이, 잘못 끼워진 책갈피처럼 내 삶에 끼어들어 소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오히려 내 마음의 취향은 단순한 알아차림 같았다. 삶의 모든 일어남과 사라짐은 지나친 염려나 계획 없이 저절로 일어나지는 것 같았다.



걷는 곳마다 장미향이 짙게 나고 돈나무나 귤나무 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마을 구석구석을 떠다녔다. 마을 한구석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나니 잠시 다른 시공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매일 마음을 정돈하고 가꾸려고만 했던 것들이  작위적인 힘이 되어 몇 주 동안 마음이란 것이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마음에는 무게가 필요하지 않았다. 자유라는 느낌에 닿기 위해 조금씩 내려놓는 마음의 상자들로 나는 나에게 가장 알맞은 삶의 자연스러움을 익히고 있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여러 빛깔의 상념이 뛰노는 것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 상념들은 내게 도착할 듯하면서도 도착하지 않고 있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었다.

나는 의식의 무소유 안에서 여름의 휴가 계획을 미리 세워놓는 습관을 놓아버렸고 내일의 일어날 어떤 일들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일을 보류해 놓았다. 어떤 마음상자 하나를 벗어나면 오랫동안 익숙했던 공간을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의 정의된 마음들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때로 예민해지기도, 낯선 마음의 취향으로 하여금 불안에 쫒기며 마음의 둘레 속에서 오래 방황했다.



마음 설명서를 찾은 순간에는 모든 헛헛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내가 기대했던 어떤 마음 없이 그저 지금의 마음 하나가  오롯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치 모든 시간의 바람들이 모두 그 마음 하나를 지나온 것처럼...

어떤 오후가 그 마음 하나에 들어서다 자연의 흐름 속에 스스로 놓아지고 있었다. 경계 짓지 않은 마음만이 향기로 피어나는 곳에서 앞으로 그 마음이 어떤 것으로 남을지 기대하지 않은 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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