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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May 18. 2022

어떤 이름을 읽는 계절

내가 있는 마을은 항상 어디선가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주변에 카페와 펜션인 많은 곳이라 늘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 밤이면 완전히 컴컴해지는 시골마을과 달리 바닷가 근처에 상가와 마을이 형성된 이곳은 그래서 조금 특별했다. 저녁에는 산 밑에 바닷가 뷰를 두고 열어놓은 펍이나 펜션에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 음악들은 시끄럽지 않은 기분 좋은 나른함을 주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잠시 일상을 놓고 그곳에 들어가 한없이 앉아있고 싶어졌다.


휴일은 늘 조용하게 나만의 작은 축제로 만들곤 했다. 

아침에는 천천히 일어나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 한쪽에 앉아 어젯밤 꿈 때문인지 어제의 혼잡했던 일상 때문이었는지 심란한 아침의 마음을 빈 공간으로 만드는 시간을 보낸다.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마음이 곁에 핀 식물의 키를 재고 손으로 쌈채소들을 하나하나 뜯어 바구니에 옮길 때마다 나의 마음은 휴일이라는 축제기간에 서서히 들어섰다. 사라질 마음들이 시들어가고 남은 빈 공간 속에 내가 기르는 흰색 고양이가 몸 구석구석을 비볐다. 


선의라는 것은 지극히 고상한 마음의 동작이어서 창가 앞에 매달린 거미를 창밖으로 내보내는 작은 일에서부터 멀리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기꺼이 움직이는 마음을 태동시킨다.

창조라는 것은 늘 선의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누군가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방법을 고안하고 밝혀지지 않은 방식을 구함으로써 타인의 삶에 조금씩 도움을 주게 하기 위해 움직여지는 지구의 성실 한 마음 같았다.


가만히 이 마음이라는 것을 보면 늘 본질을 찾고 있는 마음의 습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이 태어난 곳을 묻게 하는 버릇이 있다. 그때마다 사람은 길을 걷다가도 생각에 빠지고 라일락의 꽃향기에 기억을 쉬게 하거나 

곁에 흔들리는 식물들의 서걱거림에 잠시 연필을 들고 세계를 탄생시키거나 혼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바람결에 듣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매번  창조하고  창조라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아끼는 마음이 모여 물질적으로 피어난 현상인지도 모른다.


나의 휴일 속에는 늘 꽃들이 있었다. 휴장 중인 조각공원 앞에 한 무리의 코스모스 물결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이 불려지기 전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라는 내가 곧잘 하는 생각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휴일에는 현실적인 이름표를 뗀 세계들이 매일 내 앞에서 축제를 벌이곤 한다. 나는 그것을 다시 무엇이라 불러주면 좋을까 진지한 고민 속에 빠져 있었다. 모든 이름을 떼어내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의 본질 가까이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의는 우연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깃든 본질을 찾는 눈을 기를 때,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하는 것들을 축복해줄 때 비치는 창가 너머 나뭇잎의 일렁거림 같다. 잠든 강아지의 몸 위에서 뛰노는 나뭇잎 그림자가 내게 창문밖에 있을 자연의 마음을 상상하게 하는 것처럼, 선의는 상상 속에서 온 이 세상에 제대로 불려진 적 없었던 것들을 위한 마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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