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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May 25. 2022

시간 너머의 힘

나의 현재는 태양이 잘 만져지는 시간에 놓여있지만, 일상이라는 한 뼘의 감정적 그늘로 얼룩져 보였다. 오늘

오전에는 도서관에 들려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바라보며 이리저리 여러 책들을 뒤적였다. 일상 속에 빠져나온 목마른 마음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가만히 내버려 두는 나만의 손쉬운 방법이다. 무수한 책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가진 머릿속 세계가 확장되는 듯한 시간 너머의 느낌을 인지하게 된다. 이제껏 안개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계의 배경을 인식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내가 가진 감정의 그늘이 차츰 물러나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느리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상에 자연적으로 생긴 감정의 무능력들이 그때서야 제자리에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처럼 잠시 방심을 허락한 마음 안에 서서히 그리고 싶은 그림들을 그려 넣어 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책만을 읽을 생각이어서 바닷가 근처에 빵집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앙버터 빵과 바질향이 나는 빵을 사 왔다. 다른 목적 없이 오로지 빵을 사러가는 그  길을 나와 함께 되돌아오는 길 속에서 나는 문득 잘 다독여진 현재를 걷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져 있었다.

평안한 마음이 아닌 나의 일상은 지쳐있거나 늘 불안하게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마음이었다. 그때마다 크고 작은 눈앞의 목표들은 내게 필요한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게 산다는 것은 나를 과거와 다르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더 이상 바뀔 것 같지 않을 일상의 압박 속에서도 새벽 운동을 나가고 조금씩 생식을 해보거나 채소로 이루어진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고 자기 계발서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나를 상상했다. 삶에 의구심을 가지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삶을 희망하는 것은 미래에서 온 새로운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눈앞의 단단한 목표를 가질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얻었다. 내가 늘 찾고자 하는 안정적이고 평안한 마음이란 새로운 마음 하나에 갑자기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준비하던 훈련들의 단단함이 빚어낸  속도였다. 그 속도에 의지해 앞을 향해 나아갈 때 나는 더 이상 연약한 인간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강해져 있었다.



책을 많이 쌓아놓고 사는 나에게 어느 날 여동생이 언니는 왜 이렇게 많은 책을 사느냐며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TV홈쇼핑을 보며 옷이나 신발을 습관처럼 사던, 항상 무언가를 모으고 있던  엄마가  생각났다. 여동생에게 나 역시 습관처럼 어떤 것을 모으는 사람처럼 비쳤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의 여동생은 나의 삶이 지나치게 한 가지 대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그 마음의 치우침이 염려되어 나에게 은근히 알려온 것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때 확실하게 내 삶이 변화되지 못하고 있는 게으름의 원인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눈앞의 책들은  나의 삶이 변화되어야지만 쓸모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방에 쌓인 지식들이 실제 삶 속에서 회의가 되어 느껴졌을 때에는 이해와 지식과는 무관하게 일상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던 감정의 그늘을 통해서였다. 



요즈음은 부쩍 제주도에 와 살게 된 이유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려 하고 있다. 삶의 다른 방식을 찾고 내가 생각한 지식들이  나의 몸과 삶에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 위해 일상의 부분들을 수정하고 극복해가며 미래의 이상이라고만 여겼던 나의 모습과 가깝게 마주한 나를 떠올려 보곤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그 변화를 지닌 움직임이 스스로에게 힘이 되고 있을 때에는 내가 충실하게 목표들을 하나하나 수행해가고 있는 일상의 의지 속에서였다. 나의 현재가 시간 너머  나의 미래를 미리 살고 있다는 느낌이 충실히 번져나갈 때에  나의 마음은 이미 미래의 새로운 마음과 무한히 이어진 삶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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