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May 30. 2022

떠나지 않는 이정표


바닷가 근처 마을이라 밤이 되면 바람이 세게 부는 때가 있다. 바람소리에 뒤척이던 몸을 세워 명상을 해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음에 걸리는 무엇인가가 부쩍 많아져 보이지 않는 손가락 안의 가시를 찾는 것처럼 어떤 말에 살이 따가운 부분을 찾으려 하지만 마음의 불을 켜고 찾으려 하면 막상 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감각에 의존하며 가시가 있을만한 곳을 쳐다보는 것뿐이다. 새벽 명상이 잘 안 되었던 이유는 아마 그 작은 가시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말을 다듬고 말을 세우는 일상의 일을 공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밤이다.

작은 의미의 언어 안에서도 그 언어가 차지하고 있는 세상의 경계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 경계는 어찌 보면 다시 어딘가로 날아갈 작은 씨앗일 테지만 어떤 날에 유독 그것은 날카로운 톱니바퀴를 걸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가 되어 나의 정신 어딘가에 남아있곤 한다. 


사람이 없는 빈 공간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날이 계속되는 날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혼자 하는 말이 많은 나는 스스로 의식적이 될 만큼 새로운 감정의 이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외부라는 물리적 사건들의 가벼운 침몰로 사라진 내면의 언저리가 희미해져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도 모르게 박혀있던 가시를 자주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회생활 속에서 지나치게 친밀함을 형성하지 않으려 서서히 마음에 힘을 빼는 중이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분명 나의 일터이기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의 기대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때가 있다. 나의 웃음은 늘 화려해야 하고 웃지 않고 있을 때엔 가면을 좀 쓰라는 말을 듣곤 했다. 한때는 그런 삶의 연속적이고도 일방적인 힘이  내 안에 깃든 모든 자연스러움을  배제하는 것 같이 여겨졌다. 일상의 관계는 강박적일 만큼의 단순하고도 가벼운 반응들의 연속이지만  밤이면 꿈에서 건너온 걸러지지 못한 해석의 가시들이  길게 자란 마음의 그림자 속에 눈물자국처럼  걸려 있었다. 분명 그 가시마저도 내가 지어낸 상처이자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친 허상일 테지만 여전히 외부적인 정체성에 기대 있는 나의 시선은 공간을 너머 자신의 뿌리에 닿고 싶어 했다.   


모든 어제의 마음이란  나약한 것일까... 문장으로 옮겨진 언어들 사이에 꿈에 걸려 있던 가시들이 바람 부는 새벽과 함께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하나둘 들리기 시작하면 곧이어 보이지 않는 공중 속에서 연달아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든 공백들이  오랜 사색을 접고 모든 것들 사이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전 06화 신념이라는 날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