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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Aug 25. 2022

신념이라는 날개

누군가와 다른 신념이 나의 일상을 빚어간다

말차 향이 나는 쿠키를 한입 물고 커다란 격자무늬로 나누어진 통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왼쪽으로 한라산이 내다보였다. 한라산이 그 정도로 가깝게 보일 줄은 몰랐다.

한동안 멈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적당한 장소를 고르듯 평소에 지나치던 카페에 들어갔다. 집에 있으면 머릿속에 깃든 호기심 이는 연상들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에어컨이 없어서인지 바닷가 마을의 나의 집은 서서히 곰팡이가 출몰했다. 짐에 가려 보이지 않은 벽 구석에서, 욕조 바닥에서 거뭇거뭇 형체가 드러났다.

기분이 우울할 땐 환경에 의한 것인데도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결백함으로도 정화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곰팡이처럼 드러나 나를 괴롭혔다.

조급함이 생기고 걱정이 늘어나면서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곰팡이를 바라보았다. 제습기를 사야 마땅했지만 제주도에 있는 동안 더 이상 물건이 느는 것을 원치 않았다.



푸른 잔디가 펼쳐진 카페 마당은 카페 안에 울리는 단조롭지 않은 피아노 음악과 어울렸다.

더없이 평온한 풍경 속에서 나는 현실감각을 일깨우려고 부드러운 촉각을 세웠다.

때로 어떤 태도에 있어 일상의 작은 개인들은 집단의 태도를 빚어낸 것 같았다. 그들 자신의 것보다는 집단의 의식에 의해 생긴 취향... 커다란 격자무늬 통창 앞에서 한라산을 배경으로 연신 포즈를 취하며 십여 차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의식하고 있지 않던  나 자신의 습관들을 생각했다. 



수녀가 된 내 동생은 내게 성당에 다니라고 권유했다. 그러면 나의 삶의 결핍이 채워질지 모른다고 했다.

종신서원을 앞둔 그녀에게 나는 안심시키듯 "그럴게"라고 말했다. 신은 특별한 의식을 준비하는 것이거나 신에 대한 믿음을 보이기 위해 성당을 가야 하는 의도적인 행위가 없는 좀 더 자연스러운 만남일 거라는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내 안의 필요성이 느껴질 때마다 곶자왈 숲이나 오름에 오르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나 숲을 보는 마음은 같은 것이어서  대상의 한가운데 앉아 내 고요한 마음을 비췄다. 마음의 평안함을 찾지 못할 때마다 어디로든지 갈 수 있는 자연이 곁에 있어 행운이었다.

이제는 언니의 삶을 살으라는 수화기 너머 동생의 말에 나는 또다시 "그럴게"라는 대답을 했다. 

동생이 종신서원에 들어가고 그 사이 나는 어딘가를 걷고 내 삶에 좀 더 다가갈 결심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것들을 하는 각자의 삶 속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떤 행위의 유일함이 신을 불러내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작은 글쓰기로 이어진 길을 통해서라고 믿고 있었다. 무엇으로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드디어 전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이 하는 일 같았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나의 일상은 신이 하는 몸짓을 발견하기 위해 자연이라는 언어를 배우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성의 체험과 같았다.  때로는 세상의 미아 같은 서로 다른 마음들은 같은 것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내는 여러 갈래의 길인 듯했다

그것은 함부로 누군가에게 내어주지도, 의지할 수도 없는 단 한 사람이 가진 유일한 신념이고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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