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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Feb 10. 2020

한국영화의 힘 <봉준호X박찬욱>

기생충 대박

#1 올드보이X살인의 추억

영화를 거의 안 봤던 17년 전, 견학 장소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학교가 아닌 곳에서 반 아이들과 최민식의 만두 먹방을 보고 있었다. 여긴 어딘가 난 누군가 했지만 수업을 안해서 왠지 재밌게 보고 있었다. 이 곳에서 영화의 반만 본 건지 모두 본 건지 모르겠지만 충격적인 장면들로 이어지는 영화였다. 분명 학교 프로그램과 연관이 있던 곳에서 학교 관계자들이 버젓이 있던 그 낮 시간에 강혜정과 최민식의 섹스씬이 나왔다. 섹스씬이 나오면 무조건 야한 영화로 생각하고 있었던 그때, 충격으로 다가왔던 씬에 모두 집중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사실 그 씬보다 더 많은 장면들이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강혜정, 유지태, 최민식은 정말 최고의 배우들이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그렇게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하나 강렬한 영화가 같은 해에 있었다. 언제 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영화가 있었다. 송강호의 드롭킥은 정형돈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무한도전에서 드롭킥은 정말 웃겼으니까. 동네의 바보 역이었던 박노식을 범인으로 몰아서 수사를 끝내려 하고, 역시나 그 시대에 그렇지라며 엉망진창 수사의 중반 부분에 당시 미소년 박해일이 나오고, 마지막까지 엉망진창 수사로 정체를 모르는 범인을 놓친 열린 결말의 영화였다. 그 영화는 송강호가 내뱉은 마지막 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든 살인의 추억이었다. 그러니까 2003년에 나왔던 이 두 개의 한국영화가 사람들에게 꽤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그 영화는 지금도 생각나면 보는 영화가 되었다.


그 이후엔 영화를 볼 시간도 없었고 기억이 나는 영화도 없다. 친절한 금자 씨, 괴물, 박쥐, 아가씨, 설국열차, 마더가 나올 때마다 두 감독은 한국 전설의 킹전드가 되었지만 그럴 때도 그들은 내게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였지, 봉준호와 박찬욱은 아니었다. 감독보다 송강호, 최민식은 어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한국영화의 명명배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배우들을 좋아했다. 그러다 2017년, 영화 옥자가 개봉하며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월 정액을 지불하며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한 달에 얼마나 보겠냐며 꽤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넷플릭스는 4명을 모아야 한다는 점에서 절망의 문턱에 서있었다.  그래도 그 맘 때는 혼영에 재미를 붙였고, 영화를 보며 정리를 해가는 게 재밌었다.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영화관에서 하지 않았던 옥자는 건대 KU 시네마테크에서 개봉을 했고, 전혀 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영화 또한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외국에서도 높은 평점을 받았다고 하니 과연 살인의추억 감독 다웠다. 아니 살인의 추억은 박찬욱이던가. 그때까지도 감독과 영화가 매치가 안됐다. 옥자를 먼저 봤던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옥자를 봤다고 말하고 그 영화에 대해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옥자를 보고 삼겹살을 먹었던 죄책감을 말했는데 사실, 죄책감을 느낀 표정은 아니었다. 나도 먹었으니까. 옥자를 보고 울었지만 삼겹살이 맛있을 수도 있지.


#2 복수 X최민식

4명의 넷플릭스를 뒤로 한 채 어느덧 1명의 왓챠는 무료한 일상의 낙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최고의 갓서비스..  그날도 뭘 볼지 고민하다 문득 박찬욱이 스쳤다. 왓챠에는 많은 박찬욱의 영화가 있었고 복수 3부작이라고 불리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 씨를 차례대로 보았다. 박쥐와, 아가씨는 내가 박찬욱이다를 보여주는 영화였고 이것은 방구석 1열로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방구석1열 - 영화를 주제로 한 예능 방송> 과거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굉장히 혁신적인 법이 존재했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최소한 억울하지 않게 복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억울한 사람은 조금이나마 복수로 마음을 풀었을 것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다른 복수의 형태가 되었겠지만.

인간의 역사였고 이야기였던 복수는 모든 이야기의 흔한 소재가 되었다. 올드보이에서 유지태는 최민식에게 복수를 한다. 친절한 금자 씨에 이영애는 최민식에게 복수를 한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에는 송강호가 최민식이 아니라 신하균에게 복수를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에 대해서 약간 애매하지만 그냥 지금은 이렇게 쓴다. 

최민식은 복수를 당하는 역에선 최고인 듯하다. 뭔가 그에게 복수를 하면 통쾌할 정도로 악역을 잘 연기한다.

가끔 그가 선한역이 나오면 굉장히 낯설다. 다른 감독의 영화지만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이 떠오른다. (그는 이병헌에게 복수를 당한다.) 복수를 하는 영화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복수를 실패하면 피해자는 한 명이지만 성공을 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나는 이것이 복수를 다루는 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박찬욱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듯하다.


#3 서울 X봉준호

최민식 아니, 박찬욱이 복수였다면 봉준호는 서울이다. 어릴 때 괴물만 보았던 괴물은 이제는 괴물이 아니라 한강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괜히 한강 풍경들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한강의 장면들이 그때의 서울 다워 보였다. 그가 본 2003년의 한강은 친숙하면서도 꽤 가까워 보였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기생충의 서울은 괴물보다 침울하고 멀어져 보였다. 반지하집에서 사는 가족이 만드는 피자박스, 그리고 끝없어 보이는 계단들과 그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거대한 이선균과 조여정의 집. 봉준호는 그렇게 계속해서 현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현대를 가장 모른다고 했다. 지나가고나서야 그 시대를 정의하고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에 살고 있으며, 한국을 잘 안다고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한국을 알고 있을까. 늘 새로움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현재를 타인의 시선과 지식에 의해 더 알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모르는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일까. 이렇게 모르고, 낯설기만 한 2019년 서울의 풍경을 봉준호라는 거대 감독을 통해 만나는 것이 조금 신기할 뿐이었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서울을 잘 알까? 그럼 그런 서울의 이야기를 담는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 온전히 봉준호의 것일까.

기생충을 봤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가지려고 삶을 뺏고 빼앗기는 모습이 거울 같아서 나의 못난 모습이 비쳤다. 나는 그 감정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나빴다. 서울은 모르지만 못 난 내 모습을 인정했던 것이 기생충인 듯하다. 결코 선과 악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무엇이 최소한의 정의이고 도덕인지 느끼는 현대에 봉준호는 기생충을 세상에 소개했고, 결국 그는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나는 오늘 한국에 취했다. 이제부터 봉준호를 봉준호가 넘어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기대된다. 나는 그동안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고민하려 한다. 이래서 박찬욱X봉준호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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