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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Feb 27. 2020

18. 응, 그건 니 생각 이고

첫 회사로 출근한 건물 1층에는 카페가 있었다. 월요일 오전엔 그때 회사의 대표와 팀장, 그리고 나를 포함한 팀원과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회의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팀장은 지금 나의 나이였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위치에서 자리 잡고 일을 하고 싶었다. 카페를 가면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를 시키게 된다. 처음 마셔본 아메리카노는 처음 먹었던 소주와 마찬가지로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자판기 싸구려 커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었다. 밀크커피와 우유를 각각 1잔씩 뽑아 여러 번 섞는다. 그렇게 만들어 나눠 마시는 커피는 달콤했다. 달달했던 커피와는 달리 첫 사회생활은 쓰디쓴 아메리카노로 남았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던 내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타벅스를 간다. 아직도 주문은 내게 힘든 순서중 하나이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돌체 콜드 브루 한 잔이요.


메뉴를 고를 고민 없이 모두 아메리카노를 월요일마다 마셨다. 그 외 커피를 주문하기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제지했다. 모두가 말은 없어도 그 정도의 눈치가 있었다. 카페라떼나 카푸치노나 바닐라라떼 이런 건 그냥 내 돈으로 먹는 게 편했다. 가끔은 사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사무실에서 카누를 먹었던 것 같다. 커피를 먹을 만큼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카누가 익숙해진 입 맛이 아메리카노의 입맛을 적응하게 해 주었다. 나는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시키지도 않은, 누군가가 퇴근하지도 않는 시간의 답답함을 느끼며 야근을 해갔던 걸로 기억한다.  

 

월요일 회의 시간 때는 회의만 하는 게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 그때 회사의 대표가 해주는 소싯적 얘기를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문제는 거의 비슷한 얘기였다. 언제부턴가 들었던 얘기를 또 처음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왜 그때 얘기했던 것을 처음 얘기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왜 그때 했던 얘기를 듣는 팀장과 팀원은 처음 듣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내가 대표님, 그 얘긴 저번 주 회의 때도 했고, 저저번 주에도 했고, 1달 전에도 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과거 한풀이가 아닌 회의 시간이 끝나면 사무실로 올라가 일을 시작했다.  

참 꼰대 가득한 회사 중 하나였다. 회식을 하다가 같은 팀 부장과 갈등을 보였던 대리는 그 회식 날 부장과 싸웠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고,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있었냐며 진급을 시키며 몇몇 사람의 야근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몇 년 전이지만 나는 지금 정말 별일 없이 사는 것 같다.


장기하 노래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노래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그때 그 노래를 뽑고 싶다.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몇 달째 구석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음반을 

괜히 한 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예쁜 물감으로 서너 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었구나


노래가 떠다니는 기억들을 붙잡아준다. 그때 그 노래는 바로 그런 노래다.    


베스트 3

1. 그때 그 노래

2. 내 사람

3. 등산은 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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