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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Mar 08. 2020

27. 새들이 날아오를 때

나는 나의 끈기와 한계를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게 내 희망을 고집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한 번 발을 들였으니까 겉이라도 포장해보자라는 마음은 있어서, 포장만 몇십 년째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포장이 잘 되지 않더라도,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만 그럴싸하다 싶으면 된다. 포장은 했네 정도라고 지나 칠정도만 해도 성공이라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설픈 포장이라도 한 게 조금은 다행이다 싶은 게 고작 고전문학 몇 권정도를 읽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완독 권수를 늘리고 있고, 기록하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또한 내가 읽었던 것들이 누군가의 창작 작품으로 나오거나 언급되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나, 언급되는 양이 많아지면 독서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에피톤프로젝트의 객원으로 참여했던 심규선은 루시아로 활동한다. 개인적으로도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가수인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연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모두 한 편의 뮤지컬과 같다. 노래도 노래지만 손, 발, 몸동작, 표정 모든 것을 연기하며 노래를 하는데, 그 몸동작들이 잘 어우러져 집중해서 보게 된다. 사실 심규선은 콘서트를 해도 예매하기 정말 힘든 가수다. 그런 콘서트를 예매한다는 것은 마치 몇 명만 선택받은 은혜로운 일이다. 몇 달 전부터 그녀의 콘서트를 기대하는데 콘서트 당일 출근이 잡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티켓을 팔았어야 했는데, 그 티켓을 산 사람이 너무 기분 좋게 오두방정을 떨며 티켓 값을 주길래 꼬집어주고 싶었다. 아니면 그때 내 못 된 마음의 눈이 그렇게 보이게 했나 보다. 아무튼 얄미웠다.


그래도 몇 년간 페스티벌에서 봤었다. 일부러 심규선 때문에 간 건 아니지만 그 날 라인업에 심규선이 있으면 1순위는 심규선이었다. 같은 시간대에 하는 가수는 심규선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면 심규선을 보러 페스티벌을 간 거니까! 무대에 서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공연을 하는데, 이젠 그렇게 노래를 하지 않으면 어색해 보일 것 같다. 심규선의 데미안은 새들이 날아오를 때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한 번은 그녀가 그린플러그드 해변무대에서 데미안을 부르기 전에 작년 여기서 데미안을 부를 때 새들이 뒤로 날아간 적이 있어서 신기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는데 그 해에도 데미안이 시작되고 나서 뒤에 새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5월이었다.


베스트3

달과6펜스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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