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 -2

by 성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생긴 자유로움은 나를 한 층 행복하게 해 주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숙주나물을 먹는 척하며 몰래 버리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게 웬만한 반찬은 버리면서 나는 홀로서기를 강행하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처음 시도하는 모든 것은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행동들의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고 잊혀간다. 잊혀갈 때쯤이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처음에 친구에게 부탁했을 때 그 마음은 물론 부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부탁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친구라고 좋았을까 매번 자신의 반찬 외에 다른 사람의 것까지 먹어야 된다는 게. 사실은 그때는 내가 먹기 싫으니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진 숙주나물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어느 베트남 식당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간 베트남 식당에서 그나마 익숙한 볶음밥을 시켰고 같이 온 친구는 숙주나물이 들어가 있는 쌀국수를 먹었다. 첫 베트남 음식은 생각보다 먹을 만했고 나는 친구의 쌀국수에 있는 숙주나물을 보면서 옛날을 잠깐 떠올렸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베트남 식당을 가지 않았었고, 그때 했던 이국의 음식과 숙주나물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잊어 갈 때쯤이었다. 당시 이지카야가 대규모로 많아진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인기였었고, 아마 자몽에 이슬 같은 시리즈가 대유행할 2015년 때쯤 누군가가 시켰던 소고기 숙주볶음이 있었다. 나는 소고기 숙주볶음에 소고기는 별로 없고 숙주만 많이 들어있음을 슬퍼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예전의 기억들을 모두 잊은 채 음식을 먹었다. 생각보다, 숙주나물은 맛있었다. 아님 그때 술자리가 재밌었다거나.



나는 이 전에도 먹던 음식이 한정적이다. 나의 입맛은 김밥, 라면, 돈가스, 제육볶음 같은 김밥천국에 더 잘 맞는 입맛이다. 그래서인지 라멘이라던가, 파스타, 리조또 같은 음식은 거의 먹어보지도 않았고 누군가에 의해서 가끔 먹거나 했는데 사실 맛있게 먹은 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라멘도 처음 먹었을 때 그닥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내가 알던 라면 맛과 다르고 면이 어색해서였을 것 같다. 굉장히 짜고, 맛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이 정도면 대체 김밥천국 외에 맛있게 먹는 음식이 뭘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만큼 까탈스럽고, 조금은 익숙한 맛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전에 실패했었던 음식도 익숙해지면서 점점 좋아지게 되는 음식이 여러 개 있다.

한 음식이 떠올랐다. 가지로 만든 지삼선, 그리고 가지 튀김이 대표적인 반전 음식이었다. 가지 또한 어렸을 때 대표 혐오 반찬 중 하나였고, 나는 가지무침으로 고통받은 날을 생각하며 가지의 맛있음을 감탄하기도 했다. 양꼬치도 익숙해지면서 좋아하게 된 음식이었다.


가끔 익숙해지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익숙해짐이라는 것은 반대로 잊혀짐과 같은 선에 있기도 하다. 이제는 소고기 숙주볶음을 익숙해하면서, 예전에 숨을 참고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삼켰던 비렸던 숙주나물반찬을 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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