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 -1

by 성운

언제나 숙주나물을 볼 때면, 나는 초등학생의 나를 떠올린다. 엄마는 콩나물을 길렀었다. 늘 집안 구석 보일러실엔 검은 봉지로 씌여있는 빨간 통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빨간 통을 볼 때마다 덮고 있는 검은 봉지를 벗기고 콩나물이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검은 봉지를 혼날 것 같다는 이유로 벗기지 않았었다. 엄마는 콩나물국을 자주 해주셨다. 콩나물과 무를 동시에 삶아서 만든 반찬도 별미였다. 다행인 것은 편식이 심했었던 내가 콩나물과 시금치, 그리고 미나리, 미역, 다시마는 잘 먹었었다. 편식을 주로 했던 반찬은 파, 양파, 고추 등의 매운 야채였었다. 특히 버섯은 입도 대지 않아서 혼난 적도 많았다.

초등학생때 급식시간은 내게 큰 고역이었다. 버섯이나, 당근, 파 종류의 먹기 힘든 반찬이 나올 때면 학교를 가기 싫을 정도였다. 그것들을 먹기 전까지 급식판을 치우지도 못하게 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 음식들이 귀한 것을 알고 있지만, 먹기 힘든 것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그 때 친했던 친구가 버섯이나, 파 같은 그런 먹기 싫은 것들을 대신 먹어주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의 먹성을 부러워했었다.

우리 집의 계란후라이는 늘 완숙이었다. 지금이야 노른자를 터트리는 반숙으로 먹지만, 그때 엄마는 노른자까지 구워서 해줬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계란이든, 계란후라이든 흰자만 먹고, 노른자만 남기거나 아니면 흰자와 노른자를 적절한 비율로 먹다가 결국은 노른자를 남기기도 했다. 가끔 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라면이나 계란후라이를 먹을 때에도 그는 노른자를 척척 먹어냈다. 노른자만 먹으면 잘 삼킬 수 없으니 김치와 노른자를 한 번에 집어 먹는 노련함도 보여주곤 했다. 그럼 나는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쳤다.

콩나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급식에서 나오는 콩나물은 자신이 있었다. 하루의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은 명백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인지, 아니면 먹기 힘든 반찬인지에 따라 오전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래도 급식반찬이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어느 반찬에 파나 버섯이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다. 오늘의 반찬을 확인하면서, 그 친구에게 부탁을 했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먹어준다고 했고, 나는 그 천사 같은 친구에게 고마워하고 안심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렸었다.

언젠가 숙주나물이 나왔을 때였다. 나는 숙주나물이라는 반찬 명을 보지 못했거나, 기억을 못했던 것이다. 콩나물 같이 생긴 나물은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맛있게 먹는 반찬으로 고기 외 1순위였기 때문에 그 나물을 아무런 의심 없이 입에 넣었다.

문제가 생겼다. 내가 아는 맛과 다른 맛이었다. 콩나물과는 다른, 그러니까 조금은 쓴, 떫은, 비린내, 식감 이 모든게 낯설었다. 나는 얼른 코를 막고, 숨을 참아서 빨리 씹으면서 그 이름 모를 나물에 대한 원망을 하며 억지로 삼켰다. 그 날은 미리 부탁을 안해서인지 그 친구도 이미 먹고 없었고, 그렇게 세상에 사기를 당해 홀로 남은 나는 외로운 긴 긴 싸움 끝에 숙주나물을 다 삼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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