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이름을 알게 될 때

단편소설

by 성운

민희는 도서관이 아닌 지하철에 책을 읽는다. 2호선 그러니까 하루에 몇 번이나 같은 위치를 도는 2호선 지하철 안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는다. 운이 좋을 땐 이른 시간에 자리가 나서 앉아 본다고 한다.

두꺼운 책도 하루면 거의 다 읽을 만큼 집중해서 빨리 읽기도 한다.

얼마 전엔 내게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동안 함께 앉아 있어 달라 했고, 그 이후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사실은 이런 긴 시간을 들인 생활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민희에게 점점 관심이 갔었고, 나도 같이 있는 시간 동안 함께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 추천을 해달라고 말했다.

민희는 이제야 물어보냐는 투로 기다렸다듯이 책 이야기를 했다.

먼저 그동안 무슨 책을 읽어 왔는지 물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던 생활을 했다. 문제지는 한 문제라도 풀어야 했고, 잘 외워지지 않는 영어단어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틀려가면서 시간을 들여야 그 날 하루의 목표 개수를 외울 수 있었다. 시간 대비 결과가 안 좋아 늘 부족한 잠에 시달리던 내겐 독서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독서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주 가까운 내 친구들이랑 비교해보면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한다.

중학교 때까지 파묻혀 살았던 판타지 소설 속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특히 신의 기사들은 시리즈별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어떤 부분에 어떤 상황들까지 기억할 정도로 빠졌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판타지 소설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이슈 됐었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 같은 책은 꼭 사서 들고 다녔었고, 독서시간은 그때그때 달라서 거의 1년을 걸쳐 1권이나 2권 정도를 읽었다. 친구들 중에서 그나마 이렇게 사서 보는 건 나뿐이었다.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독서량이었다.

민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많은 책을 읽는다. 하루에 1권을 읽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어렵고 딱딱한 엉망의 번역으로 된 책도 일주일 정도면 보는 듯했다. 만날 때마다 책이 바뀌었으니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바로 가는 곳이 도서관이나 카페나 알바가 아니라 지하철로 향하는 것은 독서를 위해서였다니 특이하다 못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민희의 특이한 습관을 알게 된 건 1학년 1학기 교양과목인 글쓰기 수업 때 우연히 친해지면서부터였다. 교양수업으로 글쓰기 수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원했던 과는 문예창작과였고, 예전부터 판타지 소설을 쓰면서 재밌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적인 이유와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온 경영학과이기도 했지만, 늘 동경했던 것은 글 쓰고 책 읽는 일들이었다.

누구나 관심이 가는 것을 먼저 보듯 나 또한 자연스럽게 눈에 띄던 과목이 글쓰기 수업이었고, 관심이 있는 부분에 강의를 듣는 것이 학점에도 유리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민희를 보자마자 고등학교 때 친했지만 짝사랑했던 A와 닮아서 정말 A인 줄 알고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지만 A가 아니라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A는 언어보다는 수학과 과학의 성적이 좋았는데, 수포였던 나는 그런 A가 신기했고, A는 내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신기해했다.

내 소설을 꾸준히 좋아해 주었고, 늘 감상평을 들려줘서 자주 써서 보여줄 수 있었다.

A와 닮은 민희를 보며 잠깐 동안 과거를 생각하며, 예전을 떠올렸는데 A는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SNS 계정을 봤다.

문예창작과를 바랐지만 경영학과에 온 나와는 달리 A는 처음부터 수학교육과를 택했다.

턱을 괴고 수학교육과의 생활은 어떨지 상상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어서 막연히 칠판에 써 내려가는 수학공식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옆에 앉은 민희가 가방에서 교재를 꺼냈고, 나는 그제야 교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강의가 시작되고 첫 수업이니까 교재 없는 사람도 많을 거라던 교수님은 간단한 수업 소개와, 글쓰기 숙제를 내주며 강의를 마쳤다. 첫 수업에서 기억나는 것은 없었지만, 두 명의 작가를 계속해서 강조했고 내 노트엔 알랭 드 보통과 파울로 코엘료가 쓰여 있었다.

둘 다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나중에서야 한국에서도 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린 대작가란 걸 알 수 있었다. 쓴 책들도 많았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는데 왜 여태까지 모를 수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썼길래, 이토록 유명할 수 있나라는 궁금증도 생겼다.


책을 언제 그렇게 읽는지, 많이 읽는 비결이 뭔지라고 물었을 때 민희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들여 책을 읽을 줄 몰랐다. 언젠가 무한히 반복되는 이 시간이 지겨워서 한 번은 다른 곳에 가서 책을 읽자고 했다. 아무리 민희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도, 하루 반나절을 지하철에 있기란 꽤 따분하고 다른 사람의 신경도 쓰이는 일이었다. 아마 아직까진 지하철이란 장소에서 책을 읽는 게 생소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지하철 외의 장소를 말하자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장소에서 독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표정이었고 이내 그러겠다고 말하던 민희가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대신 다른 장소는 내가 알아보겠다고 말하며 다시 반나절을 지하철에 머물렀다.

그때 약속을 잡은 이 후로 확실히 지하철에서 보는 것보다는 들떠 있었다. SNS에서 핫한 익선동 카페를 아침부터 예약하고 잘 보이기 위해서 몇 가지를 미리 생각 한 뒤 그 계획에 차질이 없기를 바랐다.

아침 일찍부터 날이 좋았다. 나는 민희에게 추천받은 책인 데미안을 가방에 넣고 길을 나섰다. 아마 글쓰기 수업을 안 했고 민희를 안 만났다면, 데미안을 보고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데미안은 워낙 유명한 책이니 언젠가는 읽었겠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민희는 데미안을 주며 아직 안 읽어봤으니 이 책은 지금이라도 읽어야 한다며 추천했다. 생각해보면 글쓰기 수업 교수님도 강의 내내 고전문학을 강조했고, 책을 주제로 하는 방송, 문학작품의 많은 내용에도 고전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고전문학의 무엇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모르겠지만, 데미안을 읽으면서 조금은 알 듯 말 듯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나는 한 세계를 향해 파괴하려는 알 속의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환경들이 겹치고 예전의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알을 깨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좋았지만 문득 민희가 그렇게 특이한 장소에서 책을 읽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민희는 책으로부터 무언가를 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가정도 했다.

이런 질문이 혹시라도 불쾌함을 느끼게 하지 않을지 조심스러워서 이내 묻지 않기로 했지만 또 궁금한 것을 넘기기엔 찝찝해서 언젠가는 물어봐야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1달 전부터 다시 에픽하이 <4집>에 빠졌었다. 예전의 나와 친구는 한참을 에픽하이 <4집>에 대해 감동했고,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명반 중의 명반이라고 했으며 친구는 이보다 좋은 앨범이 나올 수 없다며 예찬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활동기간을 생각하면 몇 개의 앨범이 더 나올 텐데 정말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 이후로 두 개의 앨범이 더 나왔지만, 역시 에픽하이의 <4집>을 넘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이런 생뚱맞은 기억이 지금 민희를 만나러 가는 길보다 중요한 일이 아닌데 계속해서 쓸데없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에 남아 있던 SNS에 쓴 글에는 에픽하이의 가사를 좋아했던 기억으로 쓴 글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음악을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좋아하고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 모를 안심이 생겼다.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던 사람들은 힘들거나 죽음에 가까워졌을 경우 당연하게 희생양을 선택했다. 약한 자는 그들에게 아부하며 살았고, 역사에 남은 권력은 점차 신처럼 하늘 높이 높아져갔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라 하였지만, 신이 된 인간은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의 신념으로 끊임없이 피를 흘리기도 했다. 죄 없는 고양이를 죽이고, 죄 없는 여자를 마녀라 지칭하며 살아남았던 추악함을 보여준 것도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사랑 없이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한다. 법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난 인간은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더 이상 돼지가 인간인지 인간이 돼지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가 올 때면 누가 인간을 구원해줄까. 시대의 무거움 속에서도 사랑이 꽃 폈다. 어떤 이는 인간을 가볍게 여겼지만, 어떤 이는 반대로 말과 행동을 너무나 무겁게 움직이기도 했다. 미래에 인간들은 더 오래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복제한 인간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그런 미래엔 나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사고를 하고, 감정을 가지던 사람들의 모든 생각들이 사실은 복제가 되어서 생긴 생각들을 알았을 때, 한 인간의 파괴는 어떤 식으로 결정될까. 어느 날 침대에서 깼을 때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었을 때,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은 누가 될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슬프지 않았을 뫼르소에게 공감하면 나 또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도 당연할까.

민희와 나는 얼마 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를 하면서 점점 이호선을 타는 시간은 다행히 줄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데이트할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꿈에 할머니가 왔었어"

꿈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던 민희의 첫 꿈 이야기였다.

너는 꿈을 꾸었다. 꽃이 피면서 담벼락을 붉게 물들였고, 지기 시작하며 땅을 붉게 만들었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그녀는 꽃처럼 시들었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으며 죽은 후에도 너의 마음속엔 영원히 아름다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땐 넌 심하게 병을 앓았다고 한다.

약기운에 잠들거나, 깨고 나서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던 어릴 적의 너는 할머니의 손이 누구보다 따뜻했었다.

심하게 열이 올라가서 꿈이 꿈인지 모른 채 놀라서 잠이 깰 때면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어. 그때의 할머니는 젊고 아름다웠었다. 어쩌면 그 기억 때문에 할머니를 피하게 된 것 같다. 대학생이 된 너는 더 이상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늘 폐지를 줍고 있었고, 너는 그런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더 이상 너는 그때의 약손이 필요 없었다.

할머니는 할머니처럼 늙었고, 할머니처럼 아팠다. 그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너는 할머니처럼 손을 잡지 않았다. 그때 후회하는 감정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꽃이 피면서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때 너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쉽게 낫지 않았다. 약기운에 취해 여러 번 잠이 들었고 꿈에서 누가 다가옴을 느꼈다. 익숙한 그림자 형태의 누군가 천천히 걸어왔다.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손을 잡으려 움직이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입을 움직였지만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입만 계속 뻥긋.

눈물이 목소리를 막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저 웃기만 한다. 발을 떼서 움직이고, 손을 잡고 싶었다. 손을 잡으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였겠지?"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늘 아픔과 후회의 기억을 준다. 슬픔의 크기를 보여 줄 수가 있다고 해도, 너의 슬픔과 다른 이의 슬픔을 비교할 수 있을까. 손가락을 꼬집어도 안 아플 수가 없는데.

5월이 되면 5월의 냄새를 맡는다. 넓고 무한한 우주 안의 작은 에너지를 가진 지구는 기적처럼 꽃을 피우고, 주변을 온통 5월의 냄새로 물들인다. 누구나 그랬을, 누구나 아팠을, 누구나 슬펐을 기억을 안은 채로


정확히 오늘은 민희와 헤어진 지 1년이 되었다. 이별 후 1년 동안,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시간을 보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신림역은 늘 사람들로 붐벼서, 변함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민희가 읽은 책마다 번호를 매겼고, 그중 함께 봤던 책과 글과 시들이 노트에 남아 있다. 없어지거나 잃어버릴까 봐 복사도 했다. 처음 선물 받았던 노트에는 짧은 편지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유일한 보물이라 생각했었다.

서로 시처럼 편지를 쓴 노트도 가져왔다.

민희의 체온이 그리웠다. 손을 잡을 때 이 손을 놓을 날이 올까,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치 결과가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헤어졌다.

적든 많든 기억을 하나씩 상실할 것 같다.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눈동자가 기억나지 않았다. 분해되어 가는 기억은 아주 깊이 가라앉는다. 적어도 이런 부분은 기억 속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괴롭혔다.

사진도 없고 인쇄도 없던 오래전 옛 조상들은 어떤 식으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했을까.

각자의 기억에 어떤 장소 어떤 상황
떠오르는 노래와 억양, 말투, 멜로디, 음악, 이름의 이름을 알게 될 때, 첫 소절, 첫 소개, 그리워질 때, 새벽, 취한 밤, 어떤 모습,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공간, 시선, 시간, 걸음속도, 날씨, 비 오는 날과 흐린 날, 모든 순간과 순간 사이의 공백, 타이밍, 틈, 하늘, 별, 구름모양, 사진, 웃는 얼굴

지난 1년간의 시간을 돌리면서 생각 한 대화 하나가 생각났다.

-이 노래 제목 알아?

-처음 듣는데?

-듀엣

-노래 좋네 누가 부른거야?

이름의 이름을 알게 될 때의 의미는 아마 그 때 처음 으로 오랜 기억으로 들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같은 것을 보지만 같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끝은 언제나 있었다. 끝이 있을 때마다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한한 시간의 공간,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의 멈춤. 그런게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들이 아쉬운 것은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을 모두 최선을 다 할 수 없는걸 알면서.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야 할 순간이 존재한다. 그때 못 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게 아마 후회일 것이다.

나는 이 후 후회의 깊이가 늘어난 사람이 되었다. 늘 대비를 하기도 전에 끝이 찾아왔다.

끝이 끝이기전에 알 수 있으면 끝이 아니게 할 수 있을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순간이 될까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버스엔 창틈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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