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완주 능력
마라톤을 신청한 것은 순전히 있어 보이기 위해서였다.
42.195km의 분명한 기록을 내가 뛰어서 완주한다는 것이 조금 멋진 일 같았다.
그래서 햇살 좋은 4월의 어느 날, 처음부터 풀 마라톤을 할 수는 없으니
광화문에서 하는 서울 하프마라톤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10km와 하프마라톤이 있었고, 당연히 같은 가격에 더 있어 보이는 하프마라톤을 신청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모른다이다. 모른다는 겸손하고 아름답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불확실하니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모른다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아마 2달 정도 남았을 것이다. 연습을 해야 했지만 사람은 알다시피 잘 바뀌지 않는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집에서 할 일이 생각보다 많진 않지만 오래오래 느릿느릿한 여유로 몇 개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조금 하고, 책도 보고, 폰도 좀 하면 금방 12시가 되는 게 반복되었다.
이 생활이 계속됐는데 결국 시간은 2주밖에 남지 않았다.
하프마라톤을 신청해놓고 연습도 안 했으면서 2주일밖에 않았음을 자책하며,
이번 일은 조금 심각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또 왠지 모르게 이유가 없는 자신감은 완주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프마라톤을 나간다고 말했고, 친구에게 미리 장담을 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그 친구에게 너 그럴 줄 알았다. 포기할 줄 알았다는 말은 듣기 싫었던 이유도 컸다.
역시 사람은 역시 마감에 쫓기면 변한다. 그렇게 귀찮아하던 내가 거짓말처럼 동네의 운동장으로 갔다.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지쳐서 금방 걸을 수밖에 없었다. 첫 연습으로 한 달리기에서 내 체력이 정말 저질이란 것을 다시 한번 잘 말해주었고, 완주하겠지는 곧 완주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되어 있었다.
반면에 몇몇의 눈에 띄는 사람들은 같은 거리를 돌며, 나를 여유롭게 추월하며 저 멀리 작아져갔다.
막상 대회에서는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고 걷고 뛰는 것을 반복하며 제한 시간 내 완주를 했다.
며칠 전에 내한으로 왔었던 콜드플레이의 추억을 생각하며, 좋아하는 에픽하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지점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도 모른 채
오직 완주를 할 수 있는 몸상태를 생각하며 뛰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모른다의 힘이 어쩌면 가능성을 크게 만들어 준 것이다.
두 번이나 실패했던 풀 마라톤을 세 번의 도전 끝에 완주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끝까지 걸으며 완주했다.
내 뒤엔 70살의 노장 할아버지뿐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벽을 쓰러트려보았다.
내가 가졌던 많은 감정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가졌던 모든 감정 중 진심은 얼마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감정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어떤 감정은 도망이 필요했다.
오랫동안이나 솔직함을 두려워하면서 언제나 모른다는 말로 방어를 해본다.
모른다는 것이 최소의 방어막이었을 테니까.
그러면 최소한 덜 상처 받고 덜 위로가 필요하니까.
긍정의 가능성보다 부정의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대비를 하면서
또 긍정의 가능성을 기대하고는 혹시나 해서 모른다고 말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생각 때문에 희망고문 같은 긍정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부정의 가능성은 언제나 긍정의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부정의 가능성이 늘 주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부족함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물 한 잔의 반 밖에 안 남은 상황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어쨌든 잘 정돈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낯선 감정을 만났던 날에 나는 분명 무엇을 생각하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 사람들의 표정에서 때로는 무관심을, 비웃음을, 자책 등을 통해 부정의 가능성을 대비했던 날에 공통의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일상을 파묻고는 잊어가는 것을 고민해봤다.
마라톤을 하고 나서 본 하늘이 생각난다.
같은 하늘인데도 달랐으니까.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하늘을 볼 때면 파랗거나 검은색만을 보며 지냈던 것 같다. 아니 가끔은 노을 진 멋진 풍경.
그렇게 새 하얬던 하늘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내 얄팍한 인내심이 조금 긍정으로 변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