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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Dec 16. 2020

자유라는 공기
영화 노예 12년


인간은 구분을 짓는다. 그 구분에는 성별, 인종, 국가, 지역, 종교, 이념 등 수 없이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며 또는 인간을 인간 같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을 가르는 기준은 도덕과 양심 즉, 선의 의지에 달렸다. 인간은 각자 의지를 통해 다른 선택 안을 가질 수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이뤄진 정의는 인류를 발전시켰다. 의 기준이 모두 같았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누군가는 도덕이나 양심의 선을 깨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큰 이익이 따라올 경우엔 양심에 따라 정의가 되거나 옳은 일이 되었다. 이토록 인간은 수많은 의로 인해 충돌해왔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누가 판단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진실은 승자의 기록이 되었다. 도덕을 알려주었던 많은 철학의 사유가 무력해졌을 때, 물질적인 면이 정신적인 면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 인간은 이 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부유해졌고 강해졌다. 생존에 가까운 배고픔으로 몸부림치는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과는 달리 힘과 돈에 의해 약자가 생겨나기 시작하며 계급으로 나뉘었다. 정의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힘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을 사용하며 사냥을 했던 과거의 인간과 요리를 하는 현대의 인간이 누리는 행복엔 얼마 큼의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 행복은 생존해야만 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처럼 다른 종류일 것이다. 분명한 건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이유에는 자유로운 삶의 행복일 것이다. 이것은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을 가치 있는 희망일 것이다. 행복을 그리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무언가를 빼앗긴 모습일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행복을 가장 억압하는 게 무엇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랬을 때 제일 처음 나는 자유가 없는 인간들이 떠올랐다.

자유. 얼마나 공기 같은 것인가. 너무나 당연해서 만약에 공기가 없다면이 상상이 되지도 않을 만큼. 

영화 노예 12년을 접했던 첫인상은 바로 이랬던 점을 파고들어 강렬한 인상으로 시작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자유의 필요성은 누군가에게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차별의 굴레였다. 미국이라는 신대륙 그 신대륙에는 인디언이 살고 있었고, 정복자들은 차츰 미국의 동쪽에서 자리 잡아 세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흑인을 재물로 취급하며 부를 늘렸다. 흑인 노예는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로 인해 곧 전쟁이 발생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흑인은 해방이 되었다. 흑인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되었다. 흑인 여자는 그런 삶이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자유를 위해 살아가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누군가에는 허용이 되지 않는 무력한 단어였다. 

영화 노예 12년은 노예로 착취당하는 흑인들의 삶을 그렸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자유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많은 흑인이 노예로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이었던 과거를 희망으로 잡아둔다. 혹독한 시련과 이해하지 못할 상황 속에서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력감이 괴롭힌다. 개인은 견고한 시스템에서 할 수 선택은 없었다. 실제로 겪었던 경험을 통한 책이 영상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영화는 자유, 양심, 도덕과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모든 백인이 악랄한 노예를 다루는 '나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의는 인간에게 오만함을 주었다. 정의는 우리의 편이다. 주께서 항상 우리를 살펴 주고 있다고 성경을 읽으며 믿었다. 그러다 우리라는 형태는 어떤 극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개인이 되기도 하였다. 최초의 연대는 무슨 형태였을까. 생명과 이익에 반하는 존재가 우리에게 위협을 줄 때 서로 잡아먹었던 인간은 함께 연대했다. 엄청난 위협도 무찔렀을 것이다. 적을 내부가 아닌 외부로 돌림으로써 어제의 적이었던 너희가 우리가 되면서 더 위협적일 거라 생각했던 적을 상대로 이겨낸 최초의 사건.

이로 인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그늘진 과거는 벗어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또 다른 상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상대를 구분하는 건 쉬웠을 것이다. 분명 같은 인간일 것이다. 다른 형태의 옷, 다른 색을 지닌 피부, 언어 그리고 생활권과 벗어난 영토, 우리에겐 없는 물자나 곡식 등을 가진 우리와는 다른 종의 인간.

강자와 약자를 가리기 위해, 조금 더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인간은 구분을 통해 발전해왔다.



최초의 구분인 성별을 통해, 남성이 사냥을 나가는 동안 여성은 집을 지키며, 아이를 길렀다. 그것이 당연했던 사회에선 모두가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진리가 없다고 했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진리일 수 있다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먼 과거엔 빛나는 별들과 때로는 사라지는 해와 달들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를 위해서라면 그 진리가 변함없는 문화로 정착해나가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별과 달은 달콤한 사랑노래가 되기도 하며, 지구를 따라 돈다고 생각했던 해는 실은 태양계의 중심이 되었다.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저 두려움이 되었거나, 하늘의 반딧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젠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까. 별은 길을 잃은 방랑자에게 나침반이 되고 우주라는 넓은 세계를 여행하게 해주기도 하며 꿈과 사랑의 희망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달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모양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를 건네게 해 준다. 달이 뜬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그러고보면 과거와 같이 서로를 지켜간다는 점에서 큰 개념의 틀은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영화 노예 12년은 자유를 뺏겼다가 다시 찾는 단순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의 얽혀있는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아 한 편의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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