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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Oct 19. 2020

모호한 선을 넘길 때 <소리도 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 아래, 태연하고 태평한 범죄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에 왠지 모를 웃음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거대해 보이는 악과 맞선 나약한 악이 오히려 친숙함으로 포장되는 설정에서 본래 가지고 있던 나의 도덕의 기준을 깨버린다. 이런 영화를 볼 때면 좋은 영화를 봤다는 것과 동시에 굉장한 찝찝함으로 마음이 얼룩진다. 씻으려 해도 씻기지 않는 기름때는 자국으로 남을 것이고, 남은 흔적들에 대해서 한번 더 옳고 그름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들이 친숙해 보였고, 나는 그를 응원했을까? 을의 위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 명은 발을 절고 한 명은 말을 못 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심정 때문이었을까. 끝내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던 그의 발자취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영화는 잘 짜인 구성으로 인해  사전 소개가 없어도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대략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데, <소리도 없이>는 시작하자마자 한 세계에 편입되는 몰입감이 돋보였다. 작품 속 유아인은 대사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는 유재명을 통해 이뤄지는데, 더 놀라운 것은 유아인과 유괴된 아이의 2인 체재 때 유아인의 연기가 더 돋보였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초반 유재명이 유아인의 캐릭터를 살리는데 역할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대사가 없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욕구에서 나오는 행동, 그리고 대사들로 그들의 과거를 예측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엔 모호한 선이 걸쳐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허용되는 선, 그 선을 넘는 순간 마치 운명이 경고하는 것처럼, 결과가 발생한다.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원인이 있을 때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중 하나는 각 인물들이 정해진 선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이지만, 선과 선이 만나는 접점에서 큰 충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각자의 선 때문에 무너져버리는 데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인물들은 지키고자 했던 선에서만 행동하지만, 작품 속 유아인은 쉽게 넘어버리고 행동하는 캐릭터다. 물론 그 행동들은 결코 옹호할 수 있거나, 응원받아선 안 되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감정을 누군가에게 느낀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이자, 괴로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경우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작품 속 유아인은 어떤 한 부분이 결여된 인간이기 때문에, 아이가 느낄만한 공포를 공감하지 못해서 생긴 인간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오해를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오류의 반복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했었던 요소는 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 있을만한 이야기도 아닌 허구가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가진 하이퍼리얼리즘서스펜스스릴러는 아주 태연하고 태평한 이웃집의 비정상적인 풍경에 있었다. 범죄가 돈이 되는 것이라, 마치 물물교환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세계에서는 어떤 법과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라 세계는 무기력하고, 병들어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굉장한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한적한 농촌 풍경속 세계를 들여다볼 때, 법과 정의가 사라진 태평한 범죄의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왠지 모를 막막함이 다가왔다. 어떤 좋은 사람도, 수호자도 없는 그런 세계에 바랄 수 있는 건 작품 속의 유아인이었다. 그는 아이에게서 좋은 사람이 될 거란 희망을 기대했겠지만,  그 역시 결국 법의 테두리와 아이에게선 한낱 범죄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영화는 버닝 때문인지 버닝 이후의 유아인에 대한 삶 같은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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