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최소화하려고 한다. 나무젓가락 같이 쉬운 것들, 플라스틱 빨대 같은 것들이 전부지만. 더욱이 나무젓가락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생각해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요즘은 어플에서 불필요한 것을 빼는 체크란이 생겨서 편하다. 이건 지구환경이라던지, 환경보호가라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다. 그저 안 쓰는 게 지금으로선 더 편하고 마음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내가 더 편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일 뿐, 큰 의미를 두는 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의식하지 않을 때까지 이런 행동을 지속할 수 있다면 삶의 태도도 많이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꾸준함이 지금의 나이에는 삶의 큰 무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예전에 좋은 습관 기르기가 유행했던 것처럼, 30대 중반을 넘어서부턴 말하지 않아도 습관 기르기는 필수가 되었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엔 그런 습관 기르기를 위해서 어떤 장치가 필요한데,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을 함께하는 것이 가장 효과 있었다. 무언가를 위한 습관은 나이가 들수록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하냐면 이 것 하나로도 삶의 버팀목이 조금은 생겨나는 것이 느껴지곤 한다. 예전의 쓴 글들을 읽어보면 굳이 일기가 아니더라도, 그때의 내가 빠져 있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구나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한 편으론 나이만큼 불안한 마음도 커지고 있다. 불안한 마음은 쉽게 동요된다. 깃털처럼 가벼워 종 잡을 수 없다. 그러다 갑자기 공기처럼 옅어지기도 한다. 불안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몰래 찾아온다. 알랭드보통이 말했던 불안처럼 동질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나를 떠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나, 출발선에서 한참 달려왔다 생각하고 뒤를 봤더니 별다른 진전이 안 보일 때 불안을 느낀다.
이럴 때면 나는 가장 좋아하지만 비참한 말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 해서 그것이 성장으로 볼 수는 없다는 말. 이 짧은 문구에 현실이 놓여 있다. 어느덧 나는 대한민국에서 서른 중반을 넘은 나이가 되었고, 뭔가를 해냈어야 했을지도 몰라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낭비라 생각이 드는 시간에 살고 있다.
영화 줄리&줄리아는 어쩌면 일상의 평범함을 꾸준함으로 무장하여 이런 슬럼프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작은 격려란 생각이 들었다. 두 여성이 활약하는 시대와 공간이 달랐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달랐다. 사람마다 놓인 환경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 40시간을 일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주 80시간을 일할 것이다. 아기가 있는 가정이라거나, 1인 가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다르고 생각들은 다양하다. 이 모든 것들을 시각화한다면 다 보는 것만으로도 억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는 것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삶의 두 여성을 묶은 건 요리와 글이었다. 줄리아는 요리를 연구하며, 동료와 함께 책을 펴 낼 출판사를 찾는다. 당시 시대적 환경과 타지 속에서 녹아들어야 할 이방인이 아닌 당당한 주체로 그녀의 큰 키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상징적이었다. 미국인들을 위한 요리라는 건 그녀의 개척 정신도 대단한 감각이었지만, 정확한 타깃으로 한 선택과 집중은 어떤 사람이더라도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타고난 기지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주인공 줄리는 줄리아 레시피를 1년 프로젝트 도전을 컨텐츠로 한 블로그를 시작한다. 무언가의 시작을 위해선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줄리에게 동기부여는 아마도 단조로운 삶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작가를 꿈꾼다.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일 듯하다. 그리고 글로써 쉽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서 살고 있다. 전문 홈페이지의 세상에서 개인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개인 블로그 세상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런 개인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각자의 이야기를 적었다.
지금의 나처럼 영화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서 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가상의 독자를 두고 쓰는 일상 에세이라던가, 직무에 도움이 되는 직무에 대한 글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필요한 정보를 위해 글을 클릭할 것이며, 그 글이 꾸준하다면 구독과 좋아요, 댓글로 창작자와 소통할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요리 블로그는 최대 인기 컨텐츠라 생각한다. 요리를 하기 위해선 무슨 재료가 필요한지가 가장 중요하고, 정량과 손질하는 법 등 처음 요리를 할 때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들이 가득하다. 나 역시 요리를 할 때 지금은 대부분 유튜브를 참고하지만 유튜브조차 보기 귀찮을 땐 대충 무슨 재료만 들어가는지 검색을 한다. 물론 요리는 처음에 준비하는 시간만큼 맛이 생긴다.
줄리는 자신 혼자만의 도전을 블로그에 시작하는데 당연히 처음에 피드백 없이 혼자 요리하고 글을 쓰는 날이 지속된다. 반응이 없는 혼자만의 블로그는 외롭다. 아무런 이익도 없는 조회수가, 댓글의 관심이,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느낌들이 그런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인간은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이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관심을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인간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그 점이 때론 자신을 이기적인 존재로 만든다. 무언가를 위해 꿈을 좇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도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 주변 사람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지친 만큼,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지쳐 있는건 아닌지 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일은 소심한 사람에게도 내적인 댄스를 추게 만든다. 특히 평소에 동경하는 인물에게 들었다면 말이다. 또 한 편으론 그런 막연한 기대감도 들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는 것,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는 것.
그렇다면 별 볼일 없는 글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의 힘들고 지쳤을 시간의 보상이란 게 생길지도 모른다면서.
영화를 보며 아주 가끔씩 쓰고 있는 글에 채찍질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출발선에 서는 기분이다. 최근 다시라는 말은 두려운 단어가 되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그때처럼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예전에 해왔던 것들을 다시 할 수 있는 자세는 얼마나 삶을 탄력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다. 내가 분명 다시 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몸의 감각과 기억이 습관을 만들었던 지난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