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2017)

현재를 만들어가는 속력

by 성운

흔히 말한다. 과거엔 미래가 더 나아질 거란 낙관주의가 있었다고 한다. 통계로도 경제 성장률, 출생률, 금리 등 모든 것이 호황이라 말해준다. 저축을 하면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노력만 하면 작은 집도 장만할 수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대게 확실한 것들이다. 지나간 과거, 경험들을 기록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배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확실했던 과거는 낭만으로 포장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때로는 현재보단 과거의 달콤함에 젖어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과거가 현재를 먹어버릴 순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져야 하고,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희망과 행복을 위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현재의 방황, 이 모든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현재를 이렇게 말해준다.

확실했던 과거가 어떻든 불확실한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데 현재가 중요하지 무엇이 중요할까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확실하지도 않고 불확실하지도 않은 현재가 이어진다. 얼마 전 일본은 또한 번의 지진이 발생했다. 강진으로 피해를 받았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런 불확실함과 확실함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연재해란 생각이 들었다.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함, 지진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확실함이 생활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런 순환에 들어가 적응하며 살아갈 것 같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자연재해라고 하면 거의 태풍으로 발생되는 강풍에 의한 재해 그리고 산불이 대부분이다. 몇 번의 지진도 났지만 아직까지 지진으로 큰 피해를 받았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란 지진에 무감각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북한이 매 번 발사하는 미사일처럼 말이다.


경제적, 국제적으로도 크게 성장한 일본의 이면에는 이런 암울한 현실이 있었다. 우리가 자세히 알면 알수록 그 세계의 어두운 환경을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런 환경 때문에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를 탐한 국가로 나아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 제국주의로 나아갔다고 해도 그것이 정당화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역적인 환경이 사람들의 성향이나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라는 가정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최근에 있었던 중국과 관련된 김치 병기, 드라마 조선구마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숨기는 정부의 태도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확실한 과거로 돌리기 위함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중국에게 스스로 고개를 굽힌 조선처럼, 썩은 정부 관리들이 외세를 이용해 자기 백성을 죽였던 동학농민운동처럼, 또 나라를 위한 길이라며 일본에 나라를 넘긴 것처럼.



이 영화의 메인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낮에는 간호사로 밤에는 바텐더로 일 하면서 연애는 없다며 살아간다. 이 여자가 어떻게 살았던, 과거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 만났던 연인이 나오지만, 그것 말고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모르는 상태로 영화가 진행된다. 아마 영화에선 여자의 과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 주인공은 싱글의 대표적인 유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건 일본의 문화일 것이다.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색채가 뚜렷한 영화다. 하지만 연애란 없다고 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남자 주인공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들은 일반 로맨스 영화나 다를 것이 없다.

약속을 잡고 들떠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나, 새로운 만남에 기대하는 여자 주인공의 표정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만드는 감정은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남자 주인공은 막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말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증세로 수다를 떨어야 한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몸의 상태는 많은 핸디캡을 가졌다. 이 남자는 두 번이나 주변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여자 주인공이 생각하는 죽음의 허무와 조금 다르다. 더욱 죽음을 가까이서 겪었기 때문에 삶의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도 동료를 보면서도 왠지 모를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죽은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살아야 하는 사람은 먹어야 하고, 돈을 아껴야 하고, 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느끼는 허무를 사람에게 희망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것이 모두 잘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데이트를 한다며 빨리 보고 싶어서 뛰어가는 동료를 보고 자신도 보고 싶다며 뛰어가는 장면이 그토록 좋았다.



달리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이다. 그게 빠르던 느리던 자신이 향할 곳의 최대 속도로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만드는 속력은 현재를 만드는 최대의 에너지일 것이다. 이런 표현을 최근 봤었던 영화에서도 봤었다. 생각해보니 1917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달리기가 나오는 장면은 힘내란 말보다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간간히 나와 노래를 부르는 장치가 좋았다. 달리기와 노래로 현재를 만들어가는 속력이 현재를 힘내라고 말해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