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 이후로 진정한 마블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소 아쉬웠던 점이 몇 가지 있었지만 좋았던 점이 더 많았기 때문에, 어벤저스 이후로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첫 시도에선 합격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영웅을 다루기에는 어벤저스는 유리한 위치였다. 10년간의 인물의 서사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캡틴 아메리카도 있었지만 아이언맨의 존재는 마블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다. 그런 캐릭터의 퇴장은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를 이어갈 캐릭터가 필요하다.
이터널스는 갑자기 많은 인물들의 서사가 단 시간에 편집되어 열거되었다. 이럴 때 인물들의 과거는 대화를 통해 유추해야 하는데 다행히도 타노스와 어벤저스를 연결하는 세계관으로 진행되며, 마블을 본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터널스는 기존 마블이 가졌던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가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이런 영화가 진입장벽이 꽤 높은 이유는 단 하나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수 십 개의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터널스 감독 [클로이 자오]는 앞 선 작품 노매드랜드에서 광활한 대자연과 함께 그 속에 인간의 감정을 잘 풀었던 감독이었고 이 번 이터널스에도 그런 장점을 발휘했지만, 여기서 아쉬웠던 건 마블이라는 오락장르라는 영화에 다소 느슨한 장면을 계속해서 이어갔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물론 주인공들의 서사를 초반에 넣음으로써, 마지막 후반 부분에 설득력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싶기도 했다.
이터널스에는 꽤나 흥미로운 소재들을 다룬다.
첫 번째는 자유의지와 존재의 이유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헐리우드가 다양성을 말하는 법에 대해서다.
여기서 스포인데 이터널스는 원래 지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러니까 우주의 질서라 함은 창조를 위해선 반드시 어떤 파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블의 세계관에서는 전 우주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전 우주에서 보면 지구도 그저 그중에 하나의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를 위해 지구를 파괴해야 하는 것이 이터널스의 임무였는데, 여기서 타노스는 재평가를 받는다. 전 우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임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위해 파괴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어벤저스가 시간을 돌려 사라진 인구를 돌려놓고 타노스를 죽이면서 우주는 다시 혼란스러워지며 이터널스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
여기서 첫 번째 흥미로운 소재를 고민하게 만드는데, 이터널스의 존재의 이유와 임무인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를 그동안 정들었던 지구와 인간들을 사랑하게 되며 최초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철학에서 자유의지는 결정론과 대립된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정해진대로 간다는 통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통찰이다.
이터널스의 인물들은 서로 상반되는 가치로 대립하게 되는데, 이건 앞선 시빌워에서 보여준 갈등과 같다. 우리는 주로 결정론보다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능동적인 인물을 응원하는데, 그것이 선으로 보이기 때문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자유의지와 반대되는 결정론은 자칫 악으로 보일 수 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존재가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중간중간 들어간다고 해도 결국에는 결정되어있기 때문에, 선이든 악이든 결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 없이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한다고 하지만 결정론으로 정해진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범우주적으로 봤을 때는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기억이다.
이터널스의 인물은 오랜 시간을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대로 계속해서 살아간다. 작품 중 7,000년을 의미하는데 무한한 생명이나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 죽는 모습을 보면 무한한 생명이 꼭 영원한 삶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우리는 주로 영원한 삶을 살 때, 죽지 않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한 것들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터널스는 기억을 다루면서 7,000년간의 기억과 7,000년간 계속 초기화되는 기억을 다룬다. 여기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대한 존재와 기억에 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존재에 대한 고민은 어디까지가 나를 의미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물음표를 던져준다.
세 번째는 다양성이다.
헐리우드는 계속해서 다양성을 보여주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아닌, 어떤 인간의 모습이라도 모두가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흑인 남자가 게이로 나오는 대표적인 영화는 문라이트, 그린북이었는데 헐리우드가 다양성이라는 핑계로 어떤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이 굳혀진다면 그게 다양성일까라는 고민이 생기는 시점이었다.
끝으로 이터널스는 이런 강한 능력을 가진 신들도 인간과 다름없는 감정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점과 어벤저스의 주요 스토리가 생각나게 만드는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이 정도면 잘 뽑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남긴 영화였다.
감독 또한 첫 히어로 영화였는데 꼭 마블 어벤저스만이 아닌 엑스맨이라던지, 저스티스리그를 떠올리게 하는 연출이 반가웠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엑스맨 피닉스를 너무 참고한 건 아닐까. 그 영화는 오래전에 없어져야 했을 영화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