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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Aug 05. 2022

영화 헤어질결심 후기

영원한 재회가 있기를

붕괴 : 허물어져 무너짐.


해준은 피의자가 아니어야 했을 서래에게 덤덤히 자신의 감정을 말하며 자신의 심정을 응축한 단어를 넣어 말한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다시 형사와 피의자의 신분이 된 순간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걸 감출 수 없는 해준의 안타까움이 담긴 한마디였다. 해준에겐 붕괴만큼 자신의 심정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단어는 서래에게는 마침내 자신의 저녁을 지켜주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담당 형사의 최고의 고백이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은 이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영화는 한 번 더 파고 들어가서 비극을 시도한다. 


그 장소는 이포였다.

이포에서의 재회는 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을 절 데이트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곳에서 해준과 서래는 각자의 남편과 부인이 되어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의 위치에서 바뀐 구두와 옷을 확인한다. 여기서 이포의 특징인 안개와 원자력에 대해서 말하는데, 해준의 아내 정안이 했던 말대로 이포는 안개가 가득해서 떠나게 되는 곳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안개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짐을 암시한다. 안개는 어떤 것을 제대로 봐야 함에도 또렷이 보지 못하게 될 때를 의미한다. 안개가 가득해서 해가 온종일 없는 이포는 소설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이쯤에서 해준이 보지 못하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정안이 보지 못하는 것, 그리고 서래가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관객인 우리가 헤어질결심에서 안개에 의해 가려진 어떤 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이포로 돌아온 해준에게 생긴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의심되는 인물은 공교롭게도 참 불쌍한 여자가 된 서래였다. 담당 형사였던 해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알리바이와 증거를 수집하여 서래를 피의자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치고 자부심이 붕괴되었던 13개월 전의 심정으로 당신이 이번에도 무사할 것 같냐는 해준의 물음은 이번엔 또렷하게 보겠다는 선포였다.

그러나 이내 해준은 서래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준은 아내 정안의 말대로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의 일을 하며 생을 느끼는 자부심 있는 형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붕괴된 이후로 불면증과 이과 중심의 사고로 가득한 정안과의 삶에서 말 그대로 죽어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수염을 깎을 이유가 없는 중년의 모습을 서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래는 해준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해준은 그런 서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 마침내 한국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는 둘의 심리적 묘사와 꼿꼿하게 품위를 지켜가는 담당 형사와 피의자의 관계를 지탱하는 구조는 아닌 걸 알면서도 높은 몰입감을 부여했다는 점에서다.

꼭 이것만은 아니다. 탕웨이가 맡았던 송서래의 퇴장은 해준에게도 관객에게도 영원한 미결이자 마음속으로 남을 완벽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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