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히 그려낸 영웅의 탄생
대한민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이야기로 풀 수 있는 것이 많다. 고조선부터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최초의 통일국가 통일신라를 이어 후 삼국시대, 고려, 조선, 그리고 뼈 아픈 일제강점기를 이어 광복절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를 다룬 근대사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성인이 되는 동안 여러 매체를 접하며 알아가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김구와 같이 시대를 대표하는 위인들 외 여러 위인들이 그렇다. 대한민국 역사를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런 것들이 채워져 애국심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도 자연스럽게 생각날 정도다. 발해하면 최수종의 대조영, 고려하면 최수종의 태조 왕건, 신라하면 최수종의 해신 등 내 어린 시절 기억에 대표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를 그린 사극은 언제나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 공식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흔들림 없이 바다를 지킨 이순신 장군, 한글 창제와 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을 비롯해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여야 했던 영조, 뛰어난 외교와 대동법을 시행했지만 결국 폭군과 정치적 한계를 평가 받는 광해군, 실제론 그러지 않았지만 판타지를 심어주었던 몇몇의 가공된 설정들 (덕혜옹주, 나랏말싸미 등)은 다 아는 내용인데도 영화는 나온다.
그리고 이순신 영화는 명량에 이어 한산까지 나왔고 다음은 노량도 나올 예정이다. 이런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는 역사 그 자체로 관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우리의 역사는 슬프다. 5,000년 역사 중 평화로웠던 시대가 과연 100년이라도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싸워야 했다. 그래서 슬픔도 짙고, 상처도 깊숙이 남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신파가 들어가고, 국뽕도 들어간다. 흥행을 위해서 그리고 냉정한 영화 감상을 방해하기 위해 감성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한 때 대한민국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대한민국 사람을 다룬 것이라면 그 결과물이 처참하다고 하더라도 응원을 해야 하고 평가를 좋게만 해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라도, 재밌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우리만 좋으면 그건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치의 비극을 다룬 여러 영화나, 세계 1,2차 대전을 다룬 영화가 국뽕이 들어가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뽕과 신파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든 영화 중에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암살, 밀정, 동주, 사도, 남한산성, 광해, 왕의 남자, 1987, 태극기 휘날리며 등 괜찮은 평가를 받으면서 신파를 최대한 자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두 번째, 명량이 역사 그 자체로 흥미 있었다면 한산은 단순한 이야기로 깔끔해졌다.
한산은 전 작품인 명량을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이 이순신과 시대를 어떻게 분석했고 설득시키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한산은 이 전 명량과는 다르게 강력한 이순신을 출현시켰다. 언제나 국뽕은 위기 이후에 일어났는데 이번엔 신파도 과감히 삭제하며 이순신과 해전에 집중했다.
침략 이후 조선을 만만하게 보던 일본에게 조선이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심은 영웅, 이순신
이 한 문장 하나만으로도 한산이 해 줄 역할은 다 한 듯하다.
세 번째, 영화적으로 영웅의 서사가 완성되었다.
물론 이순신이 마블처럼 가공의 인물도 아니고, 아이언맨처럼 첨단기술을 통해 적을 섬멸하는 영웅이 아닌 실제 인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만큼은 어느 마블이나 영웅 영화에 못지않았다는 점에서 한산에선 명량을 이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산과 명량의 공통 키워드는 두려움이다. 한산은 잘 갖춰진 거북선, 판옥선으로 학익진을 펼친다. 학익진은 축구 스쿼드처럼 각 위치에 그 장수와 배가 가장 잘하는 걸 고려하여 배치한 최적의 전술 형태를 보여주는 바다 위의 성이었다.
명량은 위기로 시작한다. 원균이 패배를 하며 12척을 제외한 모든 배를 잃고, 이순신은 가진 고문과 벌을 받으며 정상이 아닌 몸으로 전장에 복귀했으니 말이다. 두려움은 조선수군의 몫이었다. 과연 12척의 배로 얼마나 수비를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씐 조선수군에 이순신은 그 유명한 필사즉생 필생즉사,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를 말하며 기강을 잡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은 우리가 알다시피 전쟁에서 조선수군은 이순신에 의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이며 적을 격파한다.
네 번째, 영화적 연출이 당연히 늘었다.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았다. 과하지 않았고, 보여줄 것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순신의 상대로 나왔던 와키자카의 카리스마나 공포를 연출로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신경을 많이 쓴 듯 보였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이순신을 그리는 영화에 일본의 장수를 더 비중이 많게 보여주고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을 제작자에서 좋아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한산에선 와키자카의 모습이나 전술적인 움직임 그리고 신중함을 필요 이상으로 보여주면서, 영웅의 모습을 극대화했다. 물론 그렇게 이기려고 몸부림쳤던 와키자카에 비해 이순신이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학익진을 펼쳐서 승리를 이끌었지만, 영화 속에서 학익진을 펼치기만 한다면 이순신은 이길 것이다라는 것을 영화 내내 관객에게 암시한다.
학익진이 펼쳐지기 전까지 원균의 빌런 역할에도 그리고 일본 왜구 무장의 전술적인 긴 두뇌싸움을 봤음에도 명량과는 달리 편안하게 승리를 이끄는 이순신의 함선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통쾌하고 압도적인 승리의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