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고로 인해 프로젝트 진행 여부가 불확실해졌고, 나는 프로젝트를 준비한 시간 때문에라도 국가 애도기간이 끝나고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길 빌었다. 코로나로 수많은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우리는 단지 버텨야 했고, 수많은 관련 업체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곳에 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독한 시간이 있을 때마다 마음은 괴로워진다.
시간은 다행히 내가 아는 모두를 회복하게 해 주었지만, 그 사이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가 알아왔던 게 전부는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나의 생각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업체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서로의 고단함을 말할 때면 최근 몇 년간 존재의 이유에 대한 우려를 조심스럽게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 나는 그저 그들의 사정을 듣기만 했다.
우리도 우리지만 우리와 함께 일 할 업체와 스텝들의 불만이 커졌다. 물론 그들도 알고는 있지만 답답함을 호소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코로나는 어찌어찌 넘어갔으나, 이번은 좀 달랐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조금은 서운했다. 같은 처지인데도 이해를 안 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우리보다 그들이 조금 더 위태로웠으므로,
어느덧 3년에 걸쳐 같은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 분과 일을 마치고 일산에서 내가 사는 집 근처로 넘어오는 동안 그간 코로나로 겪었던 일들을 공유했다.
준비를 다 했다가 취소되었던 일, 무한정 대기해야 했던 일들, 그러다가 취소되었던 일들을 모두 겪은 우리는 을의 위치에 대한 서러움을 나눴는데 나보다는 아마 그분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더 힘들었을 거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더. 그럼에도 조금 더 나를 생각해준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진 건 지난 3년의 시간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에게 몸 둘바 없이 감사했다. 내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