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를 정리하는 글 4 - 일

by 성운

일은 하고 있지만 일이 없는 한가한 12월을 보내고 있다. 작은 회사라 바로 옆 팀은 1월의 프로젝트로 바쁜 나 날을 보내고 있어서 눈치가 보이지만, 내년엔 또 반대로 우리가 바쁠 때 그들이 조금은 쉴 틈이 있을 거라 생각해보며 억지로 위안을 삼키고 있다. 이럴 때는 서럽다. 올 한 해 동안 이렇게 일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 그렇게 일을 하면서 한 해를 보내왔는데 12월에 잠깐 여유가 있다고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눈치가 보이니 말이다. 이럴 땐 할 일이 없는 여유로움의 긴 시간인 잘 보내야 할 뿐이다. 어쨌든 일은 하고 있으니까.


이 일을 하면서 일에는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메인이 되는 일, 그러니까 모든 회사의 구성원들이 붙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은 쉽게 표가 난다. 외향적인 표현을 잘할수록 유리하다. 때론 별 거 아닌 일이어도 그런 표현을 잘하는 사람은 주목을 받는다. 나는 왜 그런 표현을 하는 게 싫을까. 그래서 많이 지적을 받곤 했다. 표현도 일인가 싶었다.

그렇다 어필하는 것도 능력이었다. 어떻게 보면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어필해야 한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 사람마다 어필하는 것을 보아왔다. 누군가는 현명하게 어필을 하면서 빈 틈이 없었지만 누군가는 그들을 어설픈 흉내를 내면서 빈틈을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보이는 게 싫었다. 누군가에게 어설픈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을 내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터닝포인트가 되던 시간은 올해 9월이었다. 지금까지 해 온 방식대로 적당한 책임감과 아주 적당하게 일을 마치고 싶었다. 그랬는데 하루는 일을 하며 이슈가 생겼다. 법정싸움을 하고 있는 장소에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원고 측은 이 장소를 무단으로 계약했으니 우리에게 고소를 한다고 했다. 나는 장소 측과 계약을 한 것인데 원고 측에 왜 우리가 받아야 하는지 되물었다. 경찰까지 왔는데 나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적당한 책임감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 되었고 이 모든 것을 나의 윗사람에게 모두 넘겼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고 있었지만 알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처음부터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되는 일이 있다. 서브가 되는 일,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나는 좋았다. 일하는 티가 나지 않고,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이 온전히 조용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으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메인이 되는 일도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똑같은 조용한 일을 하는데도 시끌벅적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보고 느꼈다. 그러면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보면 괜히 불안해진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고 말이다.

아니면 아직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일 수도 있겠다. 일과 함께 계속 시간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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