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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Dec 11. 2022

감동이 점점 적어지겠지만

평소와 다른 특별한 하루를 보낸 후엔 모든 순간이 기억으로 남겠지만, 결국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 말고는 잊힐 것이다. 당장 어제 또는 짧게는 일주일 전, 길게는 한 달 전 일들까지 모두.

그래서 그 모든 것이 결국 뭘까라는 감정이 들어 쓸쓸하다. 분명 그 순간에는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 아모르파티라는 세 단어의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쳤겠지만 말이다. 

     

딱히 내겐 인생의 큰 이벤트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특별한 하루에 의미를 더하는데 그 의미가 기대치보다 낮아서 그것이 쓸쓸함으로 남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사람들 모두, 다 친절하고 다정했었는데 라면서 말이다.  

    

좋은 사진과 기억하고 싶은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사진엔 내 모습이 나와 있는 사진이었고, 그 사진은 내가 무언가를 땅바닥에 엎드려서 조형물을 찍고 있는 모습이었다.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페스티벌을 보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기념촬영을 계속 찍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단체사진도 찍었고 개별 사진도 찍었다. 웬만하면 사진을 피하는 나를 알아서 그런지 그런 사진을 찍어준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2017 그린플러그드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를 행복했던 감정이 들었다고 한동안 기억할 수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사진은 그때 내가 한참 빠졌던 생각을 나타내는 사진으로 선정했다. 당시 29살이었던 내가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29가 그렇게 많이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12월 한 달 동안 29만 보면 찍고 다녔다.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알면 알수록 세상에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재미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29라는 숫자가 그땐 그렇게 좋았다. 물론 좋으니까 떠나보내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결국 12월이 지나고 30이 되었다.     


뭐 그래서 30 이후부턴 자연스레 사진이 좋아졌다. 뭔가 특별한 순간을 담는 느낌이 좋았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거나 지워지는데 그때는 사진에 있으니까 모든 것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그렇지, 모든 게 착각이었던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이 단순한 사실을 최근에 깨달으면서 한동안 우울했다. 이걸 일찍이 깨달은 지드래곤은 삐딱하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엔 넌 변했지. 나는 지드래곤의 말로 인해서인지 예전과 같이 사진을 재밌게 찍진 않았다.   

  

결국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차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특별한 순간을 마주할 때 여전히 나는 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사진은 기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여전히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이 다시 예전처럼 잊히고 옅어지고 하고 변하고 무의미해지겠지만 그냥 그때 있는 그대로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를 보고 느낄 때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점점 적어지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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