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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Jan 01. 2023

사건의 지평선

 

생각지도 못하던 성과급이 입금되었다. 고생했다는 의미일까.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일까. 연말이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도 고생했었으니까. 그런데 작년엔 고생을 안 했을까. 그때도 고생은 했었다. 결국 회사의 일이 작년보다 올해 더 많았고 그래도 성과급을 나눠준 것이니 고생했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더 열심히 일하면 이것보다 더 줄 것이다라는 나 스스로의 결론을 내렸다. 토스에 입금된 성과급을 습관처럼 얼마 정도는 증권계좌로 얼마 정도는 다른 계좌로 이런 식으로 월급을 받을 때처럼 분산했다. 딱히 정해진 금액은 없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 정도면 되겠지

그랬는데도 뭔가 여유가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직장인에게 성과급이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줄이야. 이 정도면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결국은 증권계좌로 더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주식 마이너스를 메꾸자고 한 건 아닌데..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는 언제쯤이면 끝날까. 내년엔 괜찮으려나? 괜찮아지겠지?

주식도 주식인데 최근 계속해서 사고 싶은 게 아른거렸다. 무선 이어폰이었다. 2019년에 큰돈을 주고 샀는데 배터리가 거의 다 돼서 풀 충전을 해도 30분밖에 가지 않았다. 쓰다가 쓰다가 결국 불편함이 커져서 유선이어폰으로 바꿔서 1달간 사용했다. 물론 그동안 무선 이어폰이 아른거렸다. 그래서 며칠을 무선이어폰을 검색하고 구매버튼을 망설였다. 사도 되는 것일까 꼭 필요할까라고. 

자기 전 침대에서 검색하고 무선이어폰을 쓰는 것을 상상했는데 상상만으로도 편했다. 그래 이 정도면 사야겠다, 아침에 구매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잠을 잤다. 다음 날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뜨고 어제 보던 앱을 열고 구매를 눌렀다. 10초도 안 걸리는 일이었다. 역시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다. 출근길에 내일 올 무선이어폰을 생각하며 유선이어폰을 챙겼다. 내일이면 이 유선이어폰도 끝이겠지라는 마지막을 생각하며 새로운 시작을 떠올렸다. 누군가 그랬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그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유선이어폰은 서운해하겠지만.

다음날 무선이어폰이 도착했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최신모델로 음향이 가장 뛰어난 모델. 기대하며 폰과 연결 후 최근 인상 깊게 봤던 중경삼림의 OST인 몽중인을 들었다. 연결이 된 순간 무선이어폰은 나를 홍콩여행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눈 뜨면 외국 눈 뜨면 외국.

역시나 눈을 떠도 변함없이 내 방 의자였다. 나는 한동안 무선이어폰의 음향과 편함을 테스트하며 음악을 들었다. 역시 돈이 최고고 최신기술이 최고다. 늘 짜릿하고 새로운 게 돈을 쓰는 것이다. 역시 나는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다.     


계속해서 음악을 들으며 올 해를 정리해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봤더니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잔나비의 wish였고 50번을 플레이했었다. 글 쓸 때 많이 들었다. 아마 음악앱 말고도 유튜브로도 많이 들었으니 그 이상은 될 듯했다. 행복해질 것 같은 멜로디가 인상 깊었는데, 말 그대로 바라는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 노래였다. 내가 22년에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22년 초에 꽂힌 단어는 행복이었다. 매 해 12월 31일은 특별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하루엔 많은 사람들이 자정 전에 내 년의 새해 복을 기원한다. 그 해 가장 새해 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일 하루다. 그래서 정말 행복해지고 싶었고, 나는 한 동안 행복이 무엇 일지를 떠올리며 행복의 조건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행복하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것 같고 또는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무력감에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줄어드는 가능성이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니 다시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행복은 행복이란 단어 없이 행복함을 느껴야 되는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나이가 들고 체력이 약해지니까 가능성도 줄어드는 것 같아서 무력했다. 그러던 중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닥치니 뭔가 다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싶었고, 놓고 싶었는데 한 동안 내려놓으면서 무게를 비우는 나를 나를 바라보는 나로 보게 되었다.

결국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었다. 결코 바꿀 수 없는 일이고 내가 노력해도 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떤 사건이 생긴 이후의 일을 짐작할 뿐이다. 실제론 그 일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 예상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 

그러다가 다행일까. 일이 바빠졌고, 이런 스트레스에 대해서 조금 멀어졌다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감소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바쁜 일이 삶에 주는 긍정적인 요소일까. 나는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해답을 어느 정도 내린 것이었다. 그 해답은 적당하다는 말이었다.

적당하다 1. 적절하여 마땅하다. 알맞다. 2. 요령껏 엇비슷 대강대강 3. 대충 요령껏.  

그렇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로 보니까 요즘 나는 참 적당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일은 여전히 힘들고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적당하게 사람들을 좋아하고 적당하게 일을 하고 적당하게 책임감을 떠 넘기고 맡고 그렇게 일을 마치니 적당하게 지금의 나를 좋아졌다는 해답이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겠다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시 하자라는 행복의 다짐을 떠올렸다.     


22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은 내가 좋아하는 독소모임과 독소모임에서 알았던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가장 많이 공연을 보러 간 가수는 브로콜리너마저다. 2016년 연말공연부터 2019년까지 매 해 갔었고, 거기다가 틈틈이 브로콜리너마저의 상징인 여름 열대야 공연도 갔었으니 말이다. 좋아하게 되는 포인트는 역시 그들의 가사 때문이다. 또 하나가 있다. 같이 늙어간다는 것이다. 같이 늙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독소모임도 마찬가지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알고 보니 20년이 된 밴드였고 그 사이 5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20년을 함께 했다니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대표곡인 2009년의 우리들을 들으며 독소모임을 떠올렸다. 2015년과 현재를 무형의 어떤 형태에 스쳐 지나가는 영상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데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2009년이 되면 뭔가 다 될 거 같다는 가사처럼 막연한 미래에 희망 같은 것을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빨리 어른이 되면 어른 같은 근육을 쓸 수 있을 것 같고, 무언가 다 잘 될 것이라는 주문을 외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이상한 긍정적인 마음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목표 같은 게 없어서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려놓고 있던 걸까. 해왔던 것들을 꾸준히 하는 것조차 힘이 겨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매 년 이 맘때쯤이 되면 한 해에 무엇을 인상 깊게 읽고 봤는지 나름의 정리를 하게 되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어느덧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주문을 외쳐주는 밴드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2022년의 우리들,

그리고,

2023년의 우리들,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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