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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Dec 26. 2022

다시 월요일


격리가 끝났다. 12월 26일인 오늘은 22년의 마지막 월요일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마지막. 

출근보단 밖을 나갈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평소보다 30분 일찍 눈이 떠졌다. 이런 날은 보통 꿈을 꾸기 마련인데 이제는 꿈조차 꾸기 힘들어진다. 아님 꿈을 꾸기 힘든 나이가 됐거나.

로또를 맞추려면 돼지꿈을 꿔야 한다는데, 돼지고기도 나온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생은 틀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문을 여니 확실히 지난주 공기보다 덜 차가웠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자유의 공기를. 그리고 곧 나갈 것이다. 자유의 몸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사람들이 반가웠다. 여러분 제가 격리가 끝났습니다 건강하세요 격리기간 동안 집에서 영화도 많이 봤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몇 분이면 다가올 지하철을 기다렸다. 평소와 같은 출근길이었다. 지난주 평소와는 다른 아픈 몸으로 탔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왜 아플 땐 본능적으로 몸에서 큰일 났음이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주는 걸까, 평소에 살고 싶은 만큼 살겠다 짧고 굵게 죽겠다는 말을 해서 벌 받은 걸까. 이렇게 병든 죽음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요.  

    

사무실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흔한 일이다. 언제가부터는 아니게 되었지만. 시간의 흐름은 편함과 익숙함을 가져다준다. 3년 전인가 익숙함을 경계하라고 어느 제안서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제안서를 쓴 사람은 꼰대 중에 꼰대였지만, 비록 말뿐이더라도 말이다.

익숙함을 경계하고, 사물을 가끔 거꾸로 돌려서 보라.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꼰대는 항상 자신의 술잔이 채워져 있어야 했었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서 그의 뒤통수를 수도 없이 상상으로 때리곤 했다. 소주병을 거꾸로 그의 입에 넣고 목을 뒤로 젖히고 싶었다. 알겠으니까 네가 알아서 따라먹어. 그만큼 그가 싫었다.     


차가운 공기가 주말 내내 사무실에 있었던 것 같다. 입김이 나올 줄 알았으나 입김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못 본 게 다행이다. 정수기의 온수를 눌러 뜨거운 물을 담았다. 집에도 있었으면 편할 거 같다. 하지만 정수기는 사치다. 곧이어 한 두 명씩 사무실에 출근하며 내 안부를 물었다. 난 괜찮지 않다고 했다. 7일 동안 격리 잘해서 자유를 느끼며 나왔는데 왜 난 또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걸까. 짧은 1시간의 자유로운 공기였다. 1시간만 자유를 느꼈으면 됐지 뭐.     


갑자기 퇴근 시간이 되었다. 아 다신 오지 않을 22년의 마지막 월요일이다. 거리에 네온으로 2023이 되어 있었다. 돈 많은 동네지만 네온은 작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나, 걷는 속도가 휴대폰의 카메라를 누르는 속도보다 빨라서 찍지 못했다. 월요일 뭘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 역시 저번주 한 번도 못 간 복싱을 갔다. 이로써 열한 번째. 지속적으로 운동이라는 마음의 짐을 두고 있으니까 나름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2022년의 마지막 월요일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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