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운 Jul 27. 2023

내가 만난 직장사람들에 대하여 - 3(완결)

5. 오래 보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떠나던 날     


두 번째 회사에서 C과장은 첫 만남부터 좋은 사람이란 것을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C과장에게 반한 것은 일에서도 다른 부분에서도 보여주었는데 그의 태도였다. 나는 당시 회사 사람에게 인정이 필요한 상태였고, 회사 내의 정상적인 근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또한 개별적으로 경쟁하던 시스템과는 다른 같은 팀, 미생에서 장그래가 그토록 원했던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C과장과 B주임과 함께 이제 같은 팀원이다라는 팀원의 소속감을 말할 때마다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일 적인 부분도 그랬다. 물론 그가 나의 문서를 칭찬해 주긴 했지만 몇 년차가 된 그의 눈에 나는 그저 흉내만 낼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당한 칭찬과 함께 업무적인 것을 보여주거나 알려줄 때는 말로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이런 게 참된 어른이자 멋진 상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 나는 그처럼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것을 깨닫고 있다. C과장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을 모두 배우려고 노력했다. 귀찮을 법한데도 거짓말처럼 잘 알려주었다. 내 성격이 그렇게 친화적이지 않은데도, C과장은 편했던 것 같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러던 C과장이 어느 날 회사를 관두는 날을 말했다. 이 날까지만 나올 거야,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새로운 팀장도 곧 온다고 하니까 둘은 새 팀장님 잘 모셔라고 했던 것 같다. 한참 잘해주던 선임이 전역하는 전날 밤 심정이었다. 그땐 모포를 말고 밟기라도 했지만 여기선 그럴 수 없다. 그냥 그가 떠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C과장이 말한 그대로 그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고 대신 새 팀장이 첫 출근을 했다. 새 팀장은 C과장과는 달리 통제적인 스타일이었다. 나는 C과장때와는 달리 하루하루 압박감을 느꼈고, C과장 때를 생각하며 그와 함께 할 때 얼마나 내가 추구하던 회사생활이었나라고 뒤돌아 볼 수 있었다. 아마 첫날부터 새 팀장은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했던 것들로 나는 뭔가 틀렸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6. 많은 팀이 있는 회사가 내게 맞다     


2018년과 2019년의 가장 큰 차이는 회사의 규모다. 18년은 많은 팀이 있었고, 19년은 두 번째 회사처럼 한 팀으로 구성되었다. 18년엔 많은 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일 외에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다. 규모가 작을수록 일 외에도 개인에게 원하는 요청사항은 많아진다. 회사는 일이 중요하지만 일만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19년에 회사가 퇴사를 권유하며 내게 했던 말은 당신은 회사사람이랑 얼마나 친하냐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충격을 받았던 건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없었던 퇴사권유에다가 회사사람들과 얼마나 친하냐라는 말 때문이었다. 당신은 일을 정말 못해서 우리 회사에서는 필요 없다고 판단된다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회사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좋지만 그다지 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편하게 지내던 남자직원은 다 자르고, 신입직원들이 들어오면 얼마 안 가서 퇴사하는 회사에서 하는 말이 회사사람들과 얼마나 친하냐라는 말이라니. 나는 웃기게도 사실 그대로 아무도 친하다고 할 수 없어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이게 내 단점이다. 내가 생각해 오던 것과 전혀 다른 질문으로 나를 공격할 때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 패닉에 빠진다. 머릿속에는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고 단어들조차 정리가 되지 않아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아무런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처럼. 그래서 권고사직 시간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생각해 봤다. 나는 누구랑 친할까라는 생각으로.

18년에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 않던 부분이 규모가 작은 곳으로 이직하게 되니 생긴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권고사직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한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원 E, F, G, H를 생각했다. 그나마 편하게 지냈지만 퇴사를 한 I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친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친한 동료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동료와의 친함의 기준을 생각했다. 농담을 하는 것?, 밥을 먹는 것?, 퇴근 후에도 만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동료와 친하다는 것이 정의되지 않았다.  서먹한 E와 마지막 날즈음 저녁을 먹게 되었다. E는 내게 조금 더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먹먹했다.     


7. 나이 좀 있는 경력직 면접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나서 나는 이제와는 다른 면접을 해야 했다. 그동안은 가능성과 일에 대한 집념이나 마인드, 그리고 약간의 경력만 어필했으면 좋았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아닌 쓸모성을 보여주어야 했다. 나는 쓸모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름대로 어필했지만 면접을 봤던 회사는 나의 쓸모성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대표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직접 채용함으로써 해답이 가능하지만 쓸모성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쓸모성은 증명이 되어야 한다. 나의 쓸모성이 회사에게도 그리고 회사의 쓸모성이 나에게도 윈윈이 되어야 한다. 이력서 제출 후 면접을 보라고 오는 회사면 거의 합격을 했기 때문에, 나는 선택을 하는 입장에서 면접 후에도 계속해서 탈락하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 전과는 달리 면접을 본 이후에도 늘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몇 번을 본 지 모르겠는데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제 취직은 어렵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면접이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 회사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쓸 수 없냐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속한 업무를 하면서 그 프로그램을 들은 건 정말 처음이었기 때문에 면접관도 나도 서로 당황하는 장면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시간이 꽤 많이 지나서 문자가 하나 나왔는데 권고사직을 권유한 회사 근처에 주소로 된 곳에서 면접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뭔가 합격을 해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곧바로 면접을 잡았다. 면접관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친절하고도 적극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나를 반겨주었는데, 면접 질문은 비교적 단순한 질문만 했다. 가령 신입에게 물어볼만한 일은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밤새 작업이 가능한지, 주말에 출근이 가능한지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경력에 대한 건 왜 물어보지 않을까 내가 혹시 신입이라고 착각한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면접관은 알고 있으면서 굳이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혹시 물어볼 가치가 없던 것일까요?라는 의문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경력직이 경력을 어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회사는 각 회사에 맞는 포지션이 필요하고 그 포지션에는 이런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성격이 좋은 사람이 있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회사는 내게 어떤 한 부분을 희망했을 것이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수록 한 사람에게 요구하는 건 많을 수밖에 없다. 그가 일을 잘하고 성격이 좋은 데다가,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면서 방파제같이 막아줬으면 좋겠다는 멀티플레이어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요구하는 사항은 하나씩 줄어든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결론을 내렸고 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 편한 면접은 다음 날 합격이라는 결과로 나를 안심시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만난 직장사람들에 대하여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