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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Mar 14. 2024

한 낮


벤치에 앉아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없어 허겁지겁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휴대폰을 찾을 수 없었다. 손은 날개가 되어 있었다. 어쩐 일인지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벤치 밑에 휴대폰이 있었다. 벤치가 이렇게 높았나 싶어 힘껏 뛰어내렸고 두 팔을 벌리자 자연스럽게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휴대폰에는 부재중 2통, 여러 개의 메시지가 액정에 떠 있었다. 휴대폰을 줍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이지만, 지금의 날개로는 휴대폰을 들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종의 가위가 눌린 게 아닌가 싶어 잠을 깨려고 노력했지만 잠은 깨지 않았고, 이 모든 건 현실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주위로 모여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 저거 뭐야?

오리인가? 큰 오리?

거위래. 참 이쁘게 생겼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이 들렸다. 누가 봐도 나는 거위가 된 것이었다. 나는 부리로 내 휴대폰을 물고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져간다며 내 휴대폰을 뺏으려고까지 했다.

내 휴대폰이에요. 방해하지 마세요.

나는 속으로 외쳤으나, 애꿎은 내 거위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물가로 가자 포기했다는 듯 쳐다보았으나 여전히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을 뺏으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물이 싫었다. 정확히는 물속에 있는 느낌을 싫어해서 어렸을 때부터 물놀이를 하지 않았다. 계곡이나 바다를 놀러 갔을 때도 굳이 들어가기보다는 물에서 노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을 선호했다. 몸에 젖는 것, 체온을 뺏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밑에 의지한 채 서 있어야 한다는 공포가 물속엔 있었다.


그 사이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휘은 씨였다. 나는 물가의 반대편으로 가 통화버튼을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통화만 된다면 휘은 씨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휘은 씨가 통화연결음을 듣고 내가 있는 근처로 다가왔을 때 나는 그곳에서 휘은 씨를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약해져 감을 느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적었다.

휘은 씨.

거위로 변한 남자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있는 여자는 어떤 감정일까 보다는 지금은 뭐라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저.. 우성이에요 자고 일어났더니 이렇게 거위로 변했어요.

휘은 씨가 나를 잡더니 들어 올렸다. 무거울 텐데도 잘 올렸다. 깃털이 몇 가닥 빠졌다. 휘은 씨는 떨어진 깃털을 주어 땅에서 이렇게 썼다.

귀여워요. 우성 씨.

정말 이 모습이 귀여워요?

네. 이렇게 가까이서 귀여운 거위를 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런데 어쩌죠. 우리 데이트 이제 어떡해요.

우선 저희 집에 가요.

사람들이 볼 텐데요.

괜찮아요. 애완거위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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