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편의 소설을 퇴고하는 일은 초고보다 더 고되다. 하지만 의미가 생기는 지점을 발견했는데, 초고에서 애매하다는 내용은 과감하게 지울 수 있고, 좋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지울 수 있다는 지점이다.
지우면 지운 내용을 채워 갈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무언가는 소설 속에서 나올 수 있다. 만약 나오지 않는다면, 구성이 잘못된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구성을 다시 짜 맞추고 개연성을 의식했다.
간혹 달리기의 도움도 받았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어떻게 써야겠다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떠올리려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소설을 입력했다. 이렇게 떠올린 구성은 순전히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시적허용이 되듯이, 나만 허용이 될 가능성이 크기도 했다.
이를테면, 나는 의도한 것이지만 읽는 사람은 파악하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이 알겠지 하고 설명이 넘어가서 묘사만 있는 부분, 설명이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은데 설명이 많은 부분들이 있었다.
소설의 구성은 자기 복제를 한 듯 닮았다.
남자 주인공으로 쓸 땐 회사를 관두거나, 어디론가 떠나는 이야기를 쓰고, 여자 주인공으로 쓸 땐 남자 친구가 어디를 데려가는 것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정작 어디론가 떠나는 건 기승전결 중 전이나 결부분에 나오고 나머지는 주인공들의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기만 할 뿐이다. 내년엔 다르게 쓰려고 시도를 해야겠다.
올해 소설을 쓰면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뭘까 생각했는데 퇴고를 하는 데 있어 초고쓰는 시간만큼 들이고 있다. 그동안 쓰느라 바빠서 퇴고를 거의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같은 것을 몇 번째 보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문장이라 생각했던 것은 엉성하고, 비문 역시 많아서 퇴고할 때마다 어색한 문장이 눈에 밟히고 있다. 언제쯤 퇴고를 끝내나 싶은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주가 지나면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