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질문이 있다.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 올해 최고의 영화가 무엇이었나요?'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최고는 무엇인가요?'
영화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노래도 될 수 있다.
이때 나의 대답은 오래전부터 바뀌는 것 없이 정해져 있다.
영화는 빌리엘리어트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 노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그런데 하나씩만 말하기는 아쉽기도 하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노래에서 하나만 말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나는 하나씩 더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씩만 더 말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해서 소중하게 받은 기회에서 말하고 싶은 영화, 드라마, 노래는
에브리싱에브리웨어올앳원스, 멜로가 체질, 검정치마의 헐리우드.
그동안 왜 나는 같은 질문에 같은 답변을 할까 생각하면서, 작품에 의미에 관해선 고민해보지 않았다. 문득 결핍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나는 이 여섯 가지의 작품에서 내 결핍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빌리엘리어트는 소년의 이야기다. 그에겐 할머니와 아버지, 형이 있다. 아내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배경은 영국으로 광부직업이 저물던 시기다. 그래서 구조조정이 있었고, 광부는 파업을 한다. 아버지와 형이 광부직업이었다. 아버지와 형은 생업을 걸고 파업에 동참한다. 여기서 주인공인 빌리는 권투를 배운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는 시대, 빌리도 아버지, 형처럼 자라야 했다. 광부직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빌리는 권투에 소질을 보이지 않았다. 소질이 없으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놓게 된다. 흔한 말로 재능이 없었다. 지루해하던 중 우연히 같은 층의 발레 강습을 본다. 그때 만난 선생님은 빌리의 운명을 바꾼다.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지금까지의 설정과 초반 이야기도 좋고, 이후 펼쳐질 빌리의 꿈같은 이야기도 좋다. 그런데 인정하기 싫었던 결핍이 여기서 느껴졌다. 그건 선생님이었다. 무언가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 증명하는 일, 나타내는 일. 그 순간을 인정받고 싶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헬난이도가 되는 시점에서는 모든 가는 길에 의문이 생겨서 시작을 주저하게 만든다.
에브리싱에브리웨어올앳원스는 기이한 영화다. 화면이 수시로 바뀌고, 연기를 하는 인물이 어떤 멀티버스 속 인물이냐에 따라 직업과 성격이 변한다. 지구 1에 있는 에블린은 세금 문제로 걱정하고, 지구 2에 있는 에블린은 엄청난 스타이고, 지구 3에 있는 에블린은 긴 손으로 사랑을 나누는 존재다. 여러 에블린 중 가장 최악의 에블린은 현재의 에블린이다. 세금 문제도 모잘라 딸의 문제도 있다. 딸의 문제는 아버지를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엉망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넘친다. 멀티버스 최고의 나, 멀티버스 최악의 나, 다정해야 한다.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것, 가족의 사랑, 수많은 선택과 가능성.
아니 모든 것을 알면, 허무주의로 빠지는 걸까. 에블린이 막고자 했던 허무주의는 무엇이었을까.
모든 허무를 안 딸과 에블린의 싸움 시퀀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현실에서 엄마와 딸의 싸움을 모든 우주 속에서 만나는 딸과 엄마라는 메타포는. 그리고 그 메타포를 기반으로 현실에서 엄마에게 딸이 지쳤다고 하는 씬은. 끝내 허무주의로 들어가는 딸을, 굴러 떨어지는 돌을 바라보는 돌을.
잡는 것을 선택하는 에블린.
여기서 나는 멀티버스 최악의 나라는 말이 내 결핍을 자극한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달리기는 하루하루 쉽지 않고, 주식도 잘 안되고, 글도 잘 안 써진다. 소설은 쓰면 쓸수록 어렵고, 이러다가 소설 쓰기를 흉내만 내다가 사장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자주 아프기도 하는데 11월 들어 벌써 두 번째 독감에 걸렸다. 이러다가 병에 더 자주 걸리면 어떻게 하나 싶다.
이렇게 두 영화를 최고로 뽑지만,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빌리엘리어트다. 빌리엘리어트엔 모든 것이 있다. 에브리싱에브리웨어올앳원스처럼 대사가 많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