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밤이 추워져 창문을 닫는다. 창문을 닫고도 밤이 추워질 때, 겨울을 시작하는 첫 번째 의식인 겨울 이불을 세탁한다. 긴 시간 구겨져 있는 겨울 이불을 꺼낸다. 빨래방을 간다.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나간다. 슬리퍼를 신고 나왔는데 찬 바람이 분다. 겨울 이불이 찬 바람을 막아준다. 하지만 발가락은 여전히 시리다. 다음에 나올 땐 양말을 신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메뉴는 기본 세탁과 항균 세탁, 고급 세탁이 있다. 첫 개시니깐 돈을 더 들여 항균 세탁으로 한다. 시간을 확인한 뒤 다시 집으로. 그러고는 아침밥을 먹는다. 메뉴는 어제 배달하고 남은 치킨. 치킨은 왜 하루가 지나도 실망을 주지 않을까. 그러던 중 세탁 완료 5분 전이라는 알림이 온다. 이번엔 양말을 신는다. 건조기에 건조가 완료된 세탁물이 있다. 그것들을 꺼낸 뒤 세탁 완료된 이불을 넣는다. 겨울 이불이니까 기본 시간에 +5분을 추가한다. 기본요금에서 돈이 더 붙는다. 다시 집으로 가면서, 과자라도 살까라는 생각에 마트 부근으로 간다. 걷다가, 왠지 안 사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집에 가기로 한다. 먹다 남은 치킨을 마무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집 안 청소도 하려는데, 건조 완료 5분 전 알림에 다시 빨래방으로 간다. 갓 건조가 완료된 겨울 이불의 정전기가 두렵지만 꺼내본다. 조심스럽게 꺼내서인지 정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항균이 추가된 겨울 이불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그 뒤 외출한다. 저녁이 되면 낮아지는 온도에 필요한 두툼한 옷이 필요하다. 내일은 여름옷을 모두 정리해야지. 안에 입을 반팔 티는 따로 빼놔야지. 외출 후 돌아오는 길, 밤은 어젯밤보다 춥다. 배가 고파져 겨울이 되면 먹을 것들을 떠올린다.
붕어빵, 호떡, 호빵, 고구마, 군밤, 귤, 왜 이런 것들은 겨울이 되면 먹고 싶어지는 걸까. 이런 것들을 안 먹고도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참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며칠 전부터 귤이 아른거린다. 조만간 사지 않을까. 알고리즘에 뜨겠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 모두 늦가을에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초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워질 텐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 힘으로 초겨울을 맞이하고 긴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
감기에 걸렸는지 아침에 일어나면서 몸에 열이 나고, 콧물이 났다. 간혹 기침이 나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감기라고.
창문을 열고 잤어요.
미레 씨는 감기에 걸린 나에게 어쩌다 감기에 걸렸냐고 물었다. 새벽 내 추워지는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창문을 열어놓고 잔 게 화근이었다. 며칠 전부터 추워지는 날도 있었고, 가을 날씨처럼 좋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새벽은 달랐나 보다. 나는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가을 날씨에 추위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겨울 이불을 꺼냈어요.
벌써요?
벌써라뇨. 춥지 않으세요? 뭐 아직은 완전한 겨울은 아니니깐.
추워요. 추우니까 감기 걸린 거죠. 그러면 저랑 빨래방에 가요.
나는 미레 씨와 빨래방으로 향했다. 빨래방엔 모든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두 명은 이미 빨랫감을 옆에 두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에는 세 곳의 세탁실이 있었으므로 다른 세탁실로 향했다.
미레 씨는 겨울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나는 집에서 입고 있던 옷과 맨발에 슬리퍼만 걸치고 나왔기 때문에 차가운 바람에 발이 시렸다.
겨울 이불, 겨울옷 준비, 겨울 음식들?
저랑 같네요.
발 보니까 다른 것 같은데요.
빨래방 들어가고 싶네요. 계속 걸으니까, 발이 시리네.
나는 서둘러 다음 빨래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두 번째 도착한 그곳은 다행히 세탁기가 한 대 비어 있었다. 나는 세탁실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조금 전 미레 씨가 말했던 겨울을 준비하는 법을 떠올렸다. 겨울 이불, 겨울옷 준비, 겨울 음식들.
언제부턴가 겨울 음식들을 사 먹진 않았던 것 같네요. 저는.
귤도요?
간혹 얻어먹을 때가 있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겨울 이불이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는 미레 씨를 바라보았다. 세탁기는 웅웅 윙윙하며 힘차게 겨울 이불을 세제 거품과 함께 돌렸다. 그러고는 미레 씨가 말했다.
그러면 이번 겨울엔 한 종류씩 먹어가요.
그 말에 힘차게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다가, 한겨울의 모습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소복이 쌓여 있는 귤껍질과 고구마 껍질들이 있는 한 공간의 풍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