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지 않은 기록과ㅡ
오래전부터 내가 알기로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어른들과 틀림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아는 어른들이 한 명씩 오실 때마다,
그동안 그 어른들이 나의 어른들에게 해왔던 안부들이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중에는 여전히 웃으며 슬픔을 위로하였지만,
어떤 어른은 슬픔이 터져서 멈추지 않았다.
흐느껴 우는 사람을 포근히 감싸며
할머니는 개안타라고 여러번 반복하며말씀하셨다.
얼마큼의 슬픔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무너지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일까.
평생을 함께 사셨던 할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린날, 제사를 지내면서 생각했던 건 언제나 이 지겨운 절차가 빨리 끝났으면 했다.
제사가 끝나고도 먹는 음식은 그리 맛있지 않아서
늘 앞쪽에서 오른쪽 다과만을 노렸다.
하지만 다과조차도 늘 먹던 치토스, 자갈치 같은 스낵 맛이 아니어서 먹다가 몰래 버린 적이 많았다.
내 기억에 할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으면서
많이 혼냈다.
마지막으로 혼냈던 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신고 갔던 신발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깨끗하고 깔끔한 신발을 신고 갔을 정도로 꽤 무서웠 했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나와 사촌동생들이 불편할까 봐 가끔 우리가 모인 방에 와서 잘 놀고 있나? 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우리가 당황하듯이 일어나려고 하면 금세 누워있거라 잠깐 와봤다라 하며 나가셨다.
그러면 아무 일 없는 듯 우리는 각자의 폰과 각자의 티비를 보기 바빴다.
할아버지는 먹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베지밀 A를 좋아하셨다. 베지밀 A를 사서 명절 때마다 들렸는데 아마 그곳에서 그 베지밀 A를 볼 줄 몰라서였을까 내가 그 베지밀 A를 샀던 기억과 할아버지가 그 베지밀 A를 좋아해서였을까 아니면 베지밀 A밖에 못드셔서였을까란 생각에 눈물이 터져 흘렀다.
할아버지는 사진 속에서 웃으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할아버지의 웃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형제들의 웃음에 따라 함께 웃으셨던 것 같다.
술을 못 마셨던 할아버지는 아들들의 폭음을 염려하면서도
술자리에 함께 하다가 이내 밥을 다 드시면 방으로 들어가신다.
그러면 아들들은 아버지의 모질었던 옛날이야기를 꺼내시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것을 듣고 웃으시고
할머니는 너무 신이 나서 할아버지의 앞담화를 아들들과 술자리를 만드신다.
할아버지는 가족에 엄하셨지만, 주위의 사람들에게 아주 고마웠던 분이었던 것 같다. 나를 아는 어른들도 있었고, 내가 아는 어른들도 있었다.
저녁 늦게도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인사를 했다.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가슴을 쿵 때렸던 저녁이 생각났었다.
추석 때도 의식이 없는 모습으로 누워 계셨는데,
그때 사실은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죽음은 아직도 나와는 별개의 문제로 보였는데
이제야 조금 그 슬픔을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조금 눈에 보인다.
지겨웠던 제사의 순서와 느림으로 가득했던 따분한 명절의 일상과,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의 위로와 수고가
소중한 기억으로 산 사람들의 생을 더 끈끈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기록하고 싶지 않은 기록과
슬픔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