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의 간절한 기도와 인간적인 고뇌
충남 공주의 계룡산은 오래전부터 영험한 기도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동서 사방으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천년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 오늘 탐방을 나선 사찰은 신원사이다.
평지에 나지막이 자리하고 있는 신원사는 절 바로 앞까지 차량 출입이 가능해 접근성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지만 사찰의 고즈넉함과 위용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사천왕문에서부터 양옆으로 도열하듯 심어진 은행나무는 단풍이 지는 가을에 그 아름다움이 최고를 이루지만, 사시사철 언제 방문을 해도 힐링을 얻을 수 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곳은 신원사 내에 위치한 중악단이다. 중악단은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산신각이다. 본래 사찰은 대웅전이 메인이고 산신각은 한편에 소담하게 자리하게 마련인데, 이곳 신원사의 중악단은 마치 새로운 사찰이 들어서 있는 듯 그 위용이 남다르다.
그 연유를 살펴보니 중악단은 국가 제사처로 쓰이던 곳이라 조선 궁궐 건축에 준하는 건축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산신각에 대문간채와 중문간채를 만들고 둘레를 담장으로 둘러 독립된 공간으로 조성한 곳은 이곳이 전국 유일무이하다. 다른 사찰과 그 점을 비교하며 돌아본다면 보는 즐거움이 훨씬 더 깊어질 것이다.
중악단은 명성황후와 인연이 깊다. 명성황후는 중악단에서 기도를 올린 후 순조를 잉태했으며, 나라의 안위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한 나라의 국모로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외부 열강의 세력에 어렵게 맞서야 하는 국난의 시대적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이라 돌아보는 발걸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중악단에는 명성황후께서 기거하며 기도하던 공간이 복원되어 있다. 중악단을 진입하기 전 오른편 기와집 한 칸이 명성황후의 기도 공간이다. 국모가 지냈다고 하기에는 초라하고 작기만 하다. 그 작디작은 방에 기거하며 진심으로 바라던 것은 기도로서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작은 날갯짓이 아니었을까!
국모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특히나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앞날을 견뎌내야 하는 그 깊은 상실감을 계룡산 산신께 의지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지 않았을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더불어 그녀를 통해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니 마음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적인 장소를 살피다 보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역사서에 적힌 내용이 아니라도 좋다. 야사에 들려오는 일화라도 알게 될라치면 어느새 위안을 받기도 하고 아픔을 함께 공감하게 된다.
비록 답사를 나서는 장소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만 남은 무생물일 뿐이다. 거쳐 간 이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만 흔적을 남길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장소에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오롯이 살아나서 마치 현재를 살고 있는 듯 생동감을 전해준다.
그 생동감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안타까움은 내면의 깊이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나만의 원동력이다. 지독하게 중독되어 다시 길 위에 서게 만드는 나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문틈 사이에 깃든 그날의 기도가, 시공간을 넘어 오늘을 버티는 나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