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궁집에서 마주한 마음의 풍경

우연히 마주친 고요, 시간에 스며들다

by 혜원

고요한 숲길에서 시작된 마음의 여행

주말의 해가 유난히 쨍한 날은 으레 일찍 눈이 떠진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이런 날의 아이러니함이라니~ 이불속에서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오늘 떠날 여행지를 고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곳은 바로 남양주 궁집이다.


역사가 스며든 공간을 좋아하는 내게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최근에 재정비를 마치고 재개장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움직였다.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는 행복이니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울 수밖에 없다.



역사를 걷다, 그리고 마음에 담다

tree_pond.jpg 궁집의 평온한 연못과 주변을 둘러싼 노송들

궁집에 도착하여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평온한 연못과 그 주변을 둘러싼 노송들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소나무 숲길을 따라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땀을 식혀주며 힐링을 선사한다. 이곳은 단순히 보이는 풍경만 멋진 곳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흔적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궁집은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를 위해 지어진 집이다. 영조가 환갑에 얻은 귀한 딸을 위해 왕가에서 사용하는 재목과 목수를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져 옴을 느낀다. 하지만 화길옹주는 결혼 7년 만에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하니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이토록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비록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이토록 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사실이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궁집이 지금까지 이렇게 온전한 모습올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권옥연 화백과 이병복 무대예술감독 부부의 진심 어린 나눔 덕분이었다. 부부가 오랜 시간 관리해 온 이곳을 2019년 남양주시에 기부채납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는 이곳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남이 하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나 자신은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망설임 없이 실천한 이분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간이다.


특히 이분들의 노력이 궁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다른 지역에서 철거될 위기에 놓은 소중한 한옥을 직접 옮겨와 이곳에 복원했다는 이야기는 이분들이 얼마나 역사와 문화재를 사랑하고 지키려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토록 멋스러운 한옥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궁집이 전하는 나눔과 위로의 메시지

kungzip.jpg 연못 위 누각에서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궁집 내 한옥 다실의 모습

남양주 궁집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멋진 곳이 아니다. 이곳은 과거의 역사를 살아내 온 이들의 흔적과 현재를 지키는 사람들의 진심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노송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에 잠겼다. 도심 한복판에서 푸른 자연과 깊은 역사를 한 번에 만나는 경험은 분명 특별했다.


이번 방문은 나에게 단순한 나들이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궁집에 깃든 영조의 사랑, 화길옹주의 슬픈 삶, 그리고 부부의 아름다운 나눔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나누어 주는 뜻깊은 공간으로 추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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