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석조전, 역사를 넘어 사람의 흔적을 걷다

그 시대, 그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곳

by 혜원

그렇게 나는, 경복궁보다 덕수궁에 마음을 빼앗겼다

teras.jpg 석조전의 하이라이트 2층 테라스. 테라스에서 바라본 덕수궁 전경은 그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아직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 계절, 그럼에도 나는 계절마다 궁을 찾는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인생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복궁의 웅장함보다는 덕수궁의 아기자기함에 더 마음이 끌린다. 덕수궁에는 마치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하다. 또한, 근대의 가장 아픈 역사를 함께한 궁이기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외세의 침탈 속에서 나라의 주권을 지키려 애썼던 흔적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아름다움 속에 담긴 아픈 역사

duksukung.jpg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덕수궁은 원래 조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로 쓰이던 곳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궐이 모두 소실되자 임시 궁궐이 되었고, 이후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다시 별궁으로 남았다. 하지만 덕수궁의 역사적 쓰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이곳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덕수궁은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이후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면서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시간의 흔적이 깃든 공간, 석조전

jupkunsil.jpg 1층 접견실 - 외국에서 온 귀빈들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된 곳

덕수궁 내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은 덕수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궁궐의 전각들이 독립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석조전은 침전 겸 편전, 그리고 외교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사용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지어진 복합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덕수궁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이라 할 수 있다. 석조전은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내부 관람이 가능해 방문이 쉽지 않지만, 문화 해설사와 함께 근대의 역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에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다.


사진 한 장의 기적, 눈물겨운 복원의 기록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지어졌으나, 1910년 준공 후 고종이 급작스럽게 승하하는 바람에 정작 황제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석조전 또한 격동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의 건물로, 한국 전쟁 발발 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의 사무실로 사용되는 등 그 쓰임새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바뀌었다. 현재는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시민들에게 근대 역사를 되새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석조전 복원 과정은 눈물겨울 만큼 감동적이다. 남아있는 사진 한 장을 단서로, 사진을 거울에 비춰 반대편 건물의 모양을 추출해내는 등 최대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여러 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뜻깊은 공간이다.


황제이기 전에 한 사람, 고뇌의 흔적을 따라

kojong.jpg 고종황제

대한제국의 마지막 혼이 담겨있는 석조전을 둘러보는 동안, 한없이 우울했지만 주권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눈물 어린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더불어 대한제국의 황제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자식을 사랑했던 아버지로서의 모습 등 인간적인 면모도 느낄 수 있어 그 의미가 남달랐다. 황제라는 화려한 직함 뒤에 가려진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돌아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도 나는, 그들의 발자취가 남은 이 공간을 조용히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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