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중에도 다행이 있어 또 살아간다.
일본에 오고 처음 살았던 집은 15층 건물 중 9층의 작은 원룸이었다. 창문 밖으로 온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이 예쁜 집이었다. 일본 집은 베란다를 막아주는 이중창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집도 베란다 창이 없어서 창문 하나만 열면 하늘과 바로 맞닿는 느낌을 받았다. 침대와 창문 사이의 거리가 한 뼘이라 나는 가끔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그때마다 구름은 다른 그림을 그렸고, 종종 멋진 구름 사진을 선물로 주었다.
늦여름 저녁 시간, 식사 준비를 마치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가끔 불어 들어오는 저녁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건물이 드릴 소리를 내며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이게~ 지진이구나’ 생각하며 침대에서 얼른 내려와 웅크리고 머리를 감쌌다. 요동치는 강한 떨림이 몇 차례 있고 난 뒤, 건물이 좌우로 휘청휘청 대며 흔들렸다. 마치 건물이 흐느적거리는 에어풍선처럼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그 느낌이 너무 무서워 식은땀이 났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탓에 금방이라도 창밖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꼭 청룡열차 같은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고 꼭대기에서 내려가기 직전의 공포였다. 나는 침대 커버를 있는 힘껏 쥐고 생각했다. ‘떨어지면 이 침대 매트리스를 놓치지 말자. 매트리스가 있으니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거야’. 재난영화에서는 건물이 흔들려도 주인공들은 잘만 뛰던데 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바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마침 남편이 전화를 하자,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겨우 잡았다.
“괜찮아? 놀랐지? 지진을 처음 겪는 거라 놀랐을 것 같아서 전화했어. 나 금방 도착할 거야.”
남편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빨리 와. 나 지금 떨어질지 몰라”
여진까지 지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온 힘을 쥐고 침대 커버를 잡고 있어서 그랬는지 손도 얼얼하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옷은 식은땀에 젖어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얼른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뒤를 보니 끓여놓았던 국은 반이나 쏟아져 있었고 살림살이들이 떨어져 흩어져 있었다. 꼭 탈탈 털린 내 마음의 흔적 같았다.
이게 나의 강렬한 첫 지진 신고식이었다.
그 이후 한 달 정도 지진 후유증을 겪었다. 몸이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는 통에 현기증이 났고, 내가 흔들리는 건지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건지 도통 분간할 수 없었다. 가벼운 이명 증상과 함께, 머릿속은 온통 지진 생각뿐이었다. 지진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또 하고, 지진대비품들을 잔뜩 구비해 두었다. 지진으로 남편과 연락이 안 닿을 경우를 대비해 나름의 계획도 짜두었다. 연락이 안 되면 ㅇㅇ에 있을 테니 찾으러 오라는 식이었다. 되도록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했으며, 외출 시에는 혹여라도 지진이 올 때를 대비해 필요한 것들을 챙겨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수없이 고민했다.
지진으로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진 덕분에 얻은 것도 있었다.
첫째,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무사히 슈퍼를 다녀올 수 있는 것은 물론, 오늘 하루 별 일없이 지난 것과 하물며 9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것마저 감사했다. 굳이 감사일기를 쓰지 않아도 매 순간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변화였다.
둘째, 물욕을 버리게 되었다.
지진으로 물건들이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필요한 물건 외엔 사지 않게 되었고, 애쓰지 않아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게 되었다.
어젯밤에도 작은 지진이 났다. 그럴 때마다 다시 감사한 마음을 꺼낸다. 9층이 아니라 2층에서 살아서 떨어질 염려는 없으니 다행이다. 불행 중에도 다행이 있어 또 살아간다.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글입니다. 꺼낼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