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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일본 적응기

스마마셍!

by 미나

“스마마셍(실례합니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는 여행 시 필요한 몇 가지 일본어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발음도 문제 되지 않았고, 일어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신났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살게 되니 오히려 쉽게 말하던 단어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간단한 단어 하나에도 발음과 억양이 어색하고, 내 어설픈 발음을 듣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때 일본인들의 반응과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혐한 분위기 뉴스가 종종 나오는 탓에 더욱 긴장되었다. 빠듯한 살림 탓에 일본어 학원에 가는 대신 독학으로 배웠던 터라 더욱 자신이 없었다.



현지인들과 직접 부딪치고 대화하는 것이 능사일 텐데, 난 성격상 밖에 나가면 오히려 말수가 줄었다. 그중에 슈퍼에서 장을 볼 때가 제일 불편했다. 낯선 음식 재료들을 보며 어떻게 해 먹는지 몰라 지레짐작으로 사거나, 그 자리에 서서 상품 이름을 핸드폰으로 일일이 검색해서 찾아야 했다. 그래서 한국 식재료와 비슷해 보이는 것만 사곤 했는데 그마저도 버리는 게 더 많았다. 깻잎처럼 생겨서 샀는데 아주 쓴 맛에 놀라기도 했고, 고추인 거 같아 샀는데 미끄덩거려 뱉어버린 적도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게 오쿠라인줄 알았다. 게다가 다른 생선은 이름을 몰라 늘 고등어와 오징어만 사곤 했다.



쌀쌀한 어느 날, 엄마가 끓여줬던 쑥갓이 잔뜩 들어간 시원한 꽃게탕이 먹고 싶어 졌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꽃게탕 레시피를 묻고, 필요한 재료를 사러 슈퍼에 갔다. 먼저 수산물 코너로 가서 꽃게를 찾았다. 싱싱해 보이는 꽃게들이 스티로폼 접시 위에 하나씩 놓여 랩에 깔끔하게 싸여있었다. 나는 그중 제일 튼실해 보이는 놈을 한 마리 골라 집었다. 그리고 채소 코너에 쑥갓을 사러 갔다. 그날따라 쑥갓이 없길래 대신 비슷해 보이는 채소를 샀다. 저녁 메뉴로 시원한 꽃게탕을 끓일 생각에 내 마음이 절로 들떴다. 엄마의 시원한 맛을 상상하면서 '맛있게 끓여봐야지'하며 즐거운 도전에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집으로 왔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육수를 끓이고 채소들을 손질했다. 마지막으로 꽃게 손질을 하려고 냉장고에서 꽃게를 꺼냈다. 시원하고 얼큰한 꽃게탕을 그리며 랩을 뜯는 순간 코끝으로 전해지는 비린내. '어라, 냄새가 왜 이러지?'. 꽃게를 이리저리 둘러보니 배 부분이 누렇게 상해있었다. 슈퍼에 있는 많은 꽃게 중에 좋아 보이는 것으로 고르고 골랐는데, ‘앗!!! 이런 젠장, 이게 뭐야!’ 좋았던 기분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옆에서 된장 푼 육수가 바르르 끓고 있었다. 나는 얼른 가스불을 끄고 잠시 생각했다. '이거 환불받을 수 있나? 아냐! 말이 안 통하잖아. 괜히 갔다가 매일 가는 슈퍼에서 망신만 당하고 오면 어떡해...'. 한일사전을 꺼내 일본어로 '상했다'가 뭔지 찾아보았지만, 나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상한 꽃게를 던져버렸다. 아깝고 허무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날 저녁 메뉴는 이름 모를 채소가 가득한 잡탕이었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나는 잡탕이 된 사연을 얘기했다. “나 일본에 와서 착해진 것 같아. 한국에 있었으면 당장 달려가 환불받거나 따졌을 텐데!”. 내 말을 들은 신랑은 일본은 환불이 잘 안 되는 편이라고 말하며, 어차피 자기가 환불 요청해도 안 해줬을 것 같다며 안 가길 잘했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오늘부터 일어 강좌 수강해야겠어. 외치고 싶어. 저기요! 꽃게가 상했어요. 상했다고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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