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스라엘에서 그리스 아테네로 넘어왔다. 아테네는 유럽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느낌이였다. 그때 한창 올림픽을 준비한다며, 거리에는 올림픽기가 펄럭였다. 그리스는 올림픽의 기원지아닌가, 당시 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뤄낸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아테네의 거리들을 평가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테네 터미널의 화장실이였다. 화장실이 좌변기가 아님은 물론, 화장실 볼일 보는 곳이 문이 얼굴만 가려지고, 밑에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오픈되어 있었다. 오마이갓...굉장히 충격적인 화장실이였다. 이런데서 전세계의 손님들을 초대해서 올림픽을?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에서 파르테논 신전등을 보고, 그리스의 델피로 넘어가 신전등을 보았다. 아테네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고, 델피에서는 아버지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스 여행에서 내가 여실하게 느꼈던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누구나 다 아는 단순한 진리였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그리스 문화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였던 나는 이집트에서 느꼈던 감동과 기독교인으로써 예루살렘에서 느꼈던 것들을 그리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도 그냥 유명한 관광지 일 뿐이였고, 델피 신전도 여기가 무엇을 했던 곳인지에 대해서 거기 가서 아버지에게 짤막하게 들은게 전부인지라, 그저 내 눈에는 돌무더기 일 뿐이였다. 휴양이 아닌 유럽 여행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비행기표를 끊기 전에 해당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면, 더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은 분명하다.
델피는 신전으로 유명한 도시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도시다. 델피라는 작은 마을 이있고, 산속에 신전이 있어, 조금은 많이 걸어야 신전을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신전을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엽서를 사서 보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고 엽서를 사서 집으로 편지를 보내느라 혼자 시간을 좀 보냈다. 아버지가 밑에서 보자고 한 거 같아, 나는 편지를 다 쓰고, 주저함 없이 혼자 산을 내려왔다. 꽤 긴거리였고, 가도가도 끝이 나오지 않아,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인기있는 관광지도 아니라, 사람들도 없었다. 그때 경찰차가 보였다. 나는 경찰차로 뛰어가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 경찰은 나를 단박에 알아보고 밑에 마을에서 너희 아버지가 너를 찾고 있으니, 얼른 내려가 보라며 알려주었다.
마을에 도착해보니, 그 작은 마을에 나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누가봐도 동양인이고 누가봐도 학생일 것 같은 나에게 카페에서는 바로 알아보고 자리에 앉으라며, 과일을 주셨다. 아직도 그때 먹었던 멜론이 기억날 정도로 맛있었던 멜론이였다. 정이 넘치는 그리스....너의 아버지가 너를 애타게 찾고 있다며 여기에 앉아 기다리라며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그리고 창밖으로 아버지가 카페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아버지께 혼날까 두려워, 화장실로 숨었다. 아버지는 화장실에 숨은 나에게 소리를 치셨다. 빨리 나오라고, 버스가 떠난다며, 목소리를 높히셨다. 그 버스가 떠나면 우린 또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였다. 가까스로 잡아탄 버스에서 아버지와 나는 각각의 자리에 따로 앉아 아테네까지 말한마디 없이 돌아왔다. 호텔방에 와서야 화가 풀리셨는지, 다시 나에게 왜 카페에서 숨었는지 물어보았고, 아버지가 화나셨을까봐 숨었다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는 다 키운 아들 잃어버린 줄 알고, 십년 감수 했다며 앞으로는 기다리라고, 설마 아버지가 너를 놔두고 먼저 떠났겠냐며, 잠깐 사진 찍고 편지 쓰는데 돌아와보니 내가 없어서 마을과 신전을 몇 번 뛰어서 다녔다며, 피곤하다고 먼저 잠자리에 드셨다.
아직도 그때 아테네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의 느낌이 기억난다. 그 적막감과 함께 왔던 긴장감 그리고 피곤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