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을 운영하며 매일같이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가끔씩 아이들이 다가와 안겨올 때가 있다. 한참 열심히 연습을 마친 뒤나, 어딘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그 작은 손들이 나를 향해 뻗어올 때 나는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과 조심스러움에서 밀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것이다.
한 남자 어른으로서, 그것이 도장 관장으로서든 단순한 어른으로서든, 지금의 사회에서는 여자아이를 안아주는 행동 하나조차 오해받을 수 있다. 성추행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세상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뒤로 감추고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다.
“괜찮아, 잘했어!”
라는 격려의 말로 대신하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향해 기대 오는 아이의 마음을 거절하는 기분이 들어 속이 상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수줍게 다가와 작은 몸을 안겨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그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기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합기도 관장이 아니라 보호자로서, 그들의 든든한 어른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어떤 의도도 없는 따뜻한 행동이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시선이나 오해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있다. 세상이 점점 더 민감해지고, 더 많은 사건이 밝혀지면서 조심스럽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한 가지가 아쉽다. 우리가 이런 걱정을 해야만 하는 세상이라면, 아이들이 어른들에게서 느끼고 싶어 하는 신뢰와 따뜻함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아이들을 밀어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왜 내가 이 아이들의 마음을 바로 받아주지 못할까?” 그러나 그 질문 뒤에는 또 다른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만약 내가 안아주었을 때 누군가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 사회는 의도를 넘어선 결과를 판단한다. 여자아이를 안아주는 행위는 단순히 "위로"로 끝나지 않고, 그 행동이 남겨질 흔적을 누군가가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불안함을 남긴다. 그 불안함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모든 교육자와 어른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고민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아이들이 다가올 때, 손을 내밀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괜찮아, 관장님이 보고 있어."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대신하려 하지만, 나의 마음 한편은 늘 씁쓸하다. 따뜻함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감정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씁쓸한 교훈만 남기지 않을까.
안아줄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네고,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그들의 마음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안아줄 수 없는 이 현실이 과연 우리에게 옳은 것일까? 세상의 문제들이 결국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벽이 언젠가 허물어질 날이 올까?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맴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사랑과 신뢰를 배우고 싶어 한다. 어른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에게 많은 제약을 건다. 나는 그 제약 속에서도 내 아이들과 수련생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 비록 "안아주는 것"만큼 즉각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말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진심을 담아 전달할 수 있다면 그 따뜻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언젠가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아이들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