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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자의 옷장 Nov 03. 2022

우리는 생각하는 손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안녕하세요. 패션 알려주는 남자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손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주제의 제목은 뉴욕대학교와 영국 런던정경대의 사회학과 교수인 리차드 세넷의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에서 빌려왔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합니다.


사람의 손은 기계가 대체하고 연필과 종이는 사라지고 컴퓨터만이 남는 세상이 왔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HAND MADE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비싼 것’이라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주제에 대해 의복을 기저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생각하는 손은 이 세상을 지탱하던 것이라 저는 생각하는 데 이 대들보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제가 앞전에 [경험의 진화, 기술과 학문 그리고 지혜]라는 글에서 이야기 한 [기술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술자는 지혜롭습니다.


기술자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신의 선대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물려받은 것들이 쌓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기술은 한순간의 것이 아닌 [쌓여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쌓여옴]의 가치를 잇는 지혜로운 사람을 장인이라 부릅니다.


[생각하는 손]이라는 것은 경험이 만든 기술이 쌓여 만들어진 지혜가 창조해내는 손입니다.


따라서 장인이라 칭할 수 있는 기술자들은 [지혜롭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기술자들은 실체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이를 창조자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의 실체는 우리가 새로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새로운 본질]입니다.


이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정되어야 하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료]와 [형상]입니다.


[재료]는 의복에서 [원단]이 되겠습니다.


원단이라는 것은 그 본래의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의복을 만드는 기술자들은 원단을 가지고 하나의 형상을 구축해나갑니다.


여기서의 형상은 [입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언어 그대로의 [입혀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속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실체를 갖게 되고 그 실체는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는 본질로의 탄생이 됩니다.


이를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실로 창조입니다.


이 창조에 주목할 점은 본질의 융합입니다.


실체만을 보게 된다면 재료라는 것은 실체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실체를 바라봤을 때 원단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죠.


누군가들은 그래도 의복 실체의 본질은 [원단]이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형상]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주장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실체]는 [원단]이라는 본질이 [형상]이라는 속성의 본질을 갖고 만들어진 복합 융합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과적 본질이 실체입니다.




실체를 만들어내는 지혜로운 손은 포용 범위가 넓습니다.


의복으로 따지면 특정한 의복을 사이즈를 넘어서 개개인의 체형에 맞게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전부 [쌓여옴]에서 오는 것이겠습니다.


생각하는 손은 이전이 됩니다.



직접 만든 이미지


이것의 예를 들어 보자면 과거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과거 아버지가 아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신을 책임져주던 테일러(혹은 사르토)에게 가서 아들의 수트를 맞춰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한 그러셨죠.


이는 기술자 개인의 [쌓여옴]이라는 기술이 타인으로 확장이 되며, 그것은 타인의 경험이 되고 그 가정 내에 [쌓임]이라는 가치로 이전이 되는 것입니다.


경험과 기술이 개인의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삶과 삶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브랜드에서 [기계]가 만든 [시그니처]모델을 대를 이어 입는다면 그것 또한 [쌓임]의 가치로의 확장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기계라는 주체는 경험하지 않습니다.


또한 경험의 성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아니다.’라는 결론에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있습니다.


물론 기계와 공장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여태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은, 기계적인 부분의 성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간의 지혜로움이 설명될 수 있지만, 제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손과 손으로 이어지는 가치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쌓여옴]이라는 것은 개인의 경험으로 시간성을 띄고 만들어진 개인 기술입니다.


이것은 시장과 역사의 흐름상 개인이 타인으로 기술의 이전이나 경험의 확장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브랜드의 기계가 만들어내는 확장은 기계가 하는 확장이거나, 개인의 경험이 아닌 공장형 생산에 따른 확장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방향적인 경험의 가치 확장인 것이지, 쌍방향에서 하나의 매체 혹은 주제로 이어지는 경험의 가치 확장이 아닙니다.


이것의 가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은 경험을 쌓는 시간이나 물려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개인과 타인의 시간 속 어느 순간에서 만나 시간의 결과값이 도출되는 그런 것이죠.


기계는 경험을 넘어 시간성 또한 띄지 않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띄고 있지 않은 기계는 손과 손으로 이어지는 지혜의 이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기계라는 것은 생산의 효율성을 따지자면 사람의 손이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리고 요즘은 기계가 너무 좋아 디테일도 사람의 손을 능가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손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를 부정하고 싶습니다.


기계에 의해 발생된 빨라짐에 따른 재료의 낭비는 점점 많아지고 물량의 대량화와 위에서 말한 가치들의 부재로 인하여 실체의 가치가 하락됩니다.


경험, 기술, 지혜, 시간, 사람의 손이 만드는 것은 물량의 한정과 1:1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재료의 낭비는 없고, 실체의 가치는 이 모든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높습니다.




가격은 실체의 가치를 대변해주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시장은 자본주의의 팽배로 인하여 돈이 돈을 낳는 그런 시대입니다.


물건의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가 더욱 우선시되기 때문에,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과거 추구했던 가치들은 사라져도 된다는 [정의(正義)]가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돈이 먼저인 시대이기에 가격이 가정이 된다면 소비자는 그 가격의 결과값을 도출해냅니다.


이것은 정신이나 만듦의 가치가 아닌 그저 돈의 가치이기에 전자의 가치를 따질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죠.


이런 시장의 팽배에도 불구하고 물건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우리 인류의 자산입니다.


생각하는 손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류가 이어 온 가치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으며 과거 인류의 자산이 부정당하는 것입니다.


손과 손으로 이어지는 지혜의 이음이 이뤄지지 않는, 인류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현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더욱이 그렇기에, 이 글을 손으로 시간과 인류를 잇는 모든 장인에게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 등 패션 알려주는 남자,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패션 알려주는 남자,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03NOV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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